양유근(도시행정학과 석사과정)

미국의 정치철학자 조지프 피시킨은 저서 [병목사회]에서 ‘전사사회’라는 개념을 이용해 절차적 공정과 결과적 공정의 딜레마에 대해 천착한다. 원시 부족사회로 설명되는 전사사회에서 양질의 직업은 오로지 전사뿐이다. 성공으로 가는 통로가  하나뿐인 상황에서는 입구를 엄격하게 관리한다 해도 결과는 정의로 이어지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획일화된 통로로 몰리며 극심한 경쟁이 발생하고, 무수한 낙오자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전사가 아닌 다른 재능은 환영받지 못하고, 아이들의 꿈과 목표도 하나로 강요된다. 한국이라고 상황이 다를까. 고려·조선시대의 과거제라는 좁디좁은 병목을 통과하려는 경쟁사회는 오늘날 명문대를 가고자 하는 입시 병목이 계승했다.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사회 곳곳에 병목현상 딜레마가 편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절차적 공정이 결과적 정의로 이어진다는 환상을 버리고 병목현상부터 해소해야 한다.

한국은 IMF 이후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며 불평등이 심화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명분 삼아 노동자를 희생시켰고, 비정규직이 크게 늘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크게 늘었다곤 하지만, 지니계수를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소득분배가 극도로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명문대 입학, 대기업 취직, 서울 부동산은 유일한 성공 신화로 추앙받는다. 격차는 극심한데 성공으로 가는 통로가 획일화돼 있으니 많은 이들이 자녀를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게 하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부정과 비리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같은 모순 구조는 놔둔 채 절차적 공정만을 주장하게 되면, 왜곡된 병목 구조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고향을 떠나와 서울에 거주 중인 유근과 친구 범준은 병목 사회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불평등에 때론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을 사회구조 탓으로 돌려 포기할 순 없었다. 하지만 호기와는 다르게 어느새 그 속에 녹아들어 병목의 상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에서는 높은 임금과 후한 복리후생의 직업을 일종의 ‘신분’으로 여긴다. 무의식중에 이런 병목에서 우위를 점하려 그 속의 괴물이 되어가는 내 모습을 애써 모른 척해본다.

우리는 절차적 공정이 곧 결과적 공정으로 이어진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병목 사회의 모순을 해소해야 한다. 조지프 피시킨은 그 방법으로 ‘기회 다원주의’를 주장했다. 성공의 통로를 다양화함으로써 일단 극심한 경쟁을 완화하자는 얘기다. 노동시장을 예로 들면, 고용 안정성이 낮은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보다 높게 잡아서 균형을 맞출 수도 있다. 이처럼 곳곳의 병목현상 딜레마를 풀어갈 때, 우리는 서로가 괴물이 되는 것을 막고 결과적 정의로 이어지는 사회에 가닿을 수 있다. 괴물이 된다는 건 별것이 아니다. 자신이 괴물인 줄 모를 때, 진짜 괴물이 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