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소시] 소사소시는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보냈던 장소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을 덜어내기 위해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푼다. 기자는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걷곤 했다. 걸어가며 마주치는 예상치 못한 것들은 사소할지라도 지친 기자에게 큰 힘이 돼 왔다.

개강으로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고자 우리대학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중랑천 산책길’로 향했다. 중랑천은 경기도 양주시의 불곡산에서 발원해 중랑구를 가로질러 성동구 부근 한강까지 이어지는 하천이다. 서울 시내의 가장 큰 하천이기에 약 20개의 지류를 가진다. 학창 시절부터 주로 산책한 ‘우이천’과 ‘청계천’도 중랑천의 지류여서 그런지 오랜만에 방문한 중랑천임에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뻥 뚫린 중랑천만큼 저녁 하늘과 물에 비친 풍경을 보기 좋은 곳은 아직 찾지 못했다. 평소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기자는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이날도 어김없이 저녁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나 여느 날과는 달리 분홍색으로 물든 하늘이 드리웠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하늘 아래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기자도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어둔 채 노을이 지는 10분 동안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봤다. 풍경에 몰입한 기자를 묵묵히 기다려 준 친구는 분홍색으로 물든 하늘 뒤 숨겨진 비밀을 알려줬다. 아름다운 분홍빛 하늘의 비밀은 태풍에 있었다. 빛의 스펙트럼에서 파란 계열의 빛은 붉은 계열의 빛보다 파장이 더 짧다. 파장이 짧은 파란 계열의 빛은 태풍이 지나가기 전후로 대기 중에 수증기가 많아지면 산란해 지표에 도달하기 힘들어진다. 이에 파장이 긴 붉은 계열의 빛이 돋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태풍이 많이 발생하는 8월 말에서 9월이 되면 분홍색으로 물든 하늘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분홍빛 하늘 아래 적당한 습도와 온도, 물 흐르는 소리와 자동차 소리, 사이사이 들리는 풀벌레의 울음소리는 잡념을 내려놓고 친구와의 시간에 집중하도록 도왔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함께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스스로를 치유하기에 가장 올바른 처방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지 못한 채 점차 지쳐간다면 일단 밖으로 나가 한번 걸어보자. 기자를 사로잡은 분홍빛 하늘처럼 뜻밖의 선물이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이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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