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탐하다

지난 7월 전 세계가 초전도체로 시끄러웠다. 당사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유난히 분위기가 과열 됐었다. 상온·상압 초전도체가 개발된 게 맞다면 금전적으로든 국제적 위상으로든 얻을 이득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기초과학, 그중에서도 고체 물리 분야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최근 고체 물리학계에서 초전도체보다 더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위상 물질’이다. 지난 2016년 노벨 물리학상의 주제이기도 한 위상 물질은 그 이론의 난해함 때문에 노벨상 위원회에서 기자들에게 따로 강연을 진행했을 정도다. 지금부터 이 난해하기 짝이 없는 위상 물질, 그중에서도 ‘위상 절연체’를 이해하며 물리학의 최전선에 다가가 보자.

일반적으로 물질은 전기의 흐름에 따라 절연체, 도체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는 전자에 의해 흐르므로 이들을 구분하려면 우선 물질 내부의 전자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물체의 내부에서 전자가 존재할 수 있는 위치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전자가 이동할 수 있어 전기가 흐르는 ‘전도 띠’와 전자가 원자에 속박돼 있어 전기가 흐르지 않는 ‘원자가 띠’이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원자가 띠에 존재하고 원자가 띠와 전도 띠의 간격만큼 에너지를 받아야 전도 띠로 옮겨갈 수 있다. 절연체는 원자가 띠와 전도 띠의 간격이 너무 커서 매우 큰 에너지를 받지 않는 이상 전기가 흐르지 않는 물질을 말한다. 도체는 두 띠가 겹쳐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전도 띠에 전자가 존재하게 돼 전기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질이다. 

하지만 위상 절연체는 이 3가지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물질이다. 내부는 전기가 흐르지 않는 절연체지만 표면은 전기가 흐르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표면을 한 겹 떼어내도 새로 만들어진 표면에 전기가 흐른다. 기존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물질이다.

‘절연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위상 절연체는 전도 띠와 원자가 띠의 간격이 큰 물질이다. 하지만 위상 절연체는 내부 전자의 특별한 구조 때문에 표면에 전자가 흐를 수 있는 띠가 형성된다. 여기서 ‘위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내부 전자의 특별한 구조가 ‘위상 수학’에 의해 설명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위상 수학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 위상 수학은 일반적으로 머그컵과 도넛, 공의 관계로 설명된다. 현실 세계에서 머그컵과 도넛은 같은 모양이 아니지만 위상 수학에서는 ‘구멍이 하나’라는 점에서 같은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공과 도넛은 위상 수학적으로 다른 모양이다. 공의 구멍 개수는 0개, 도넛의 구멍 개수는 1개 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위상 수학은 공간의 부피, 위치, 크기라는 개념을 배제하고 그 특징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학문이다.

도넛과 공이 ‘구멍’의 개수라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듯이 물질들도 각각 위상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위상학적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1차원 격자구조를 생각해 보자. 
 

▲ A-B 단위 구조를 가지고 있는 1차원 격자구조
▲ A-B 단위 구조를 가지고 있는 1차원 격자구조

그림과 같이 A-B를 기본 단위로 연결된 이 물질을 보면 A-B 연결과 B-A 연결 구조가 번갈아 가며 반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A-B 연결이 B-A 보다 강하다면 ①과 같이 기본 단위와 구조가 잘 맞아 모든 원자가 격자 구조를 이루게 된다. 이를 위상학적으로 ‘뻔하다’고 하며 일반적인 물질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B-A 연결이 A-B 보다 강하다면 ②와 같이 기본 단위와 구조가 하나씩 어긋나게 돼 양 끝에 가장자리 상태가 형성된다. 이를 위상학적으로 ‘뻔하지 않다’고 하며 이런 물질이 바로 위상 절연체다. 도넛과 공의 구멍 개수가 두 물체를 위상학적으로 구분한다면 위상 절연체에서는 위상적으로 뻔한지 뻔하지 않은지가 두 물질을 구분해준다.
 

▲ 일반 물질과 위상 절연체의 표면 전자구조 차이
▲ 일반 물질과 위상 절연체의 표면 전자구조 차이

위상 상태가 다른 두 물질이 만나면 경계면에서 독특한 일이 일어난다. 위상적으로 뻔한 두 물질이 만나면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위상적으로 뻔한 물질인 공기와 뻔하지 않은 물질인 위상 절연체가 만나면 경계면에서 전도 띠와 원자가 띠가 역전돼 붙게 된다. 이것이 글의 초반에서 설명한 표면 전자 구조이고 위상 절연체가 표면에서만 전기가 흐르는 이유다.
 

▲ 위상절연체의 전자 구조의 모식도(왼쪽)와 전자 구조의 사진(오른쪽). 표면 전자띠가 X자로 전도 띠와 원자가 띠를 이어주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위상절연체의 전자 구조의 모식도(왼쪽)와 전자 구조의 사진(오른쪽). 표면 전자띠가 X자로 전도 띠와 원자가 띠를 이어주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상 절연체 외에도 위상 디락 반금속, 위상 초전도체 등 독특한 특성을 가진 많은 위상 물질군이 있다. 이러한 물질들을 고속 트렌지스터, 양자컴퓨터 등 실생활에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도 활발히 이뤄지는 중이다.

위상 절연체에서 과학자들이 신비로움을 느끼는 점은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보이던 위상 수학이라는 학문이 고체 물리와 만나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물질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학문이라도 다른 학문의 토대가 되고 또 그 토대가 된 학문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앞으로 ‘저런 쓸데없는 연구는 왜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위상 절연체 이야기를 꺼내 보는 것은 어떨까.


최강록 객원기자 
rkdfhr123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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