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운 여름의 기세가 꺾이고 어느새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마냥 반갑게 맞이하기 어려운 곳들이 있다. 바로 축산농가다. 매년 가을이 시작되면 수많은 가축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가축 전염병 발생이 느는 가을철이면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정책인 살처분도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500m 떨어진 이웃집에서 전염병이 발생했으니 사형에 처하겠다는 규칙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가축들에게는 매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살처분되는 가축, 그리고 살처분에 동원되는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봤다.

방역의 탈을 쓴 학살

살처분이란 가축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정한 반경 내의 가축들을 도살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일정한 반경’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가 규정한 긴급행동지침(이하 SOP)에 따르면 전염병 발생 농가뿐만 아니라 일정한 반경 이내 농장의 가축도 ‘예방적 살처분’에 처한다. 전염병이 퍼질 가능성이 있으니 미리 죽여서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살처분이 이뤄진 것은 2000년이었다. 당시 정부는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약 2천 마리의 소와 돼지를 살처분했다. 이후 매년 수백, 수천만 마리의 가축들이 가축전염병 방역조치의 일환으로 살처분되기 시작했다. 새천년과 함께 끔찍한 악몽이 시작된 것이다.

구제역이 발생해 처음 살처분을 벌였던 2000년 3월부터 지금까지 약 13억 6천만 마리의 소와 돼지, 닭, 오리 등의 가축들이 전염병 확산을 막겠다는 이유로 목숨을 빼앗겼다. 심지어 지난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이하 ASF)이 발생했을 때 한 가족이 기르던 애완돼지까지도 살처분됐다. 애완돼지의 주인이 이를 강력히 거부했으나 강화군은 끝내 행정대집행으로 돼지를 살처분하면서 사실상 강화도 내의 돼지를 몰살했다.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인근 500m, 3km 등으로 방역대를 설정해 방역정책을 시행한다. 최근에는 발생농장 주변으로의 수평전파보다는 여러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양상이 유지되고 있으나 여전히 예외는 없다. 지난 2020년 정부의 예방적 살처분 집행에 거부해 행정심판을 청구했던 산안마을 유재호 대표는 “방역대에 대한 근거를 찾기가 힘들다”며 “500m라고 해도 중간에 산이 있다든지 호수가 있다든지 상황에 따라 다른 부분이 있는데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고 행정 편의적인 살처분 집행 방식에 대해 비판했다.  

죽음 후에도 이어지는 고통의 굴레

감염원을 모두 죽여 없애겠다는 다소 과격한 방식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됐다. 당시 우역이 발생했을 때 다른 대안이 없어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살처분은 수많은 가축의 죽음 뒤에도 여러 문제를 남긴다. 농가에서 기르던 가축이 모두 살처분되면 농가의 회생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또한 살처분부터 이후 매몰지 관리까지의 과정에 상당한 방역예산과 국가 행정력이 투입된다. 빠른 시간 내에 작업이 이뤄지다 보니 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에 더해 살처분한 가축을 매몰하는 과정에서 토양, 지하수 오염 등의 환경문제도 나타난다. 가장 큰 문제는 죽지 않아도 됐을 수많은 생명이 ‘학살’된다는 점이다. 백신 등 여러 대안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처분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기 때문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21세기인 지금까지 해마다 반복되고 있었다.

살처분의 필요성에 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정부가 이야기하는 ‘어쩔 수 없는 죽음’의 상황에서도 생명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동물보호법』 제10조에서는 “동물을 죽이는 경우에는 …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며,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도살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농림부의 SOP에서도 “동물에게 고통이 적은 방법을 선택해 적용한다”는 기본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간과의 싸움인 전염병 대응 현장에서 지침을 지킨 안락한 죽음이 이뤄지긴 어렵다. 가축 살처분 작업에 동원됐던 살처분 업체 이씨엘 신재승 대표는 “안락사라는 건 있을 수가 없다”며 “이산화탄소를 주입하고 나서도 살아있는 가축은 굴착기로 때리거나 그냥 산 채로 묻는다”고 살처분 현장을 회고했다.
 

무분별한 살처분이 부른 환경오염

이렇게 죽음을 맞이한 동물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원치 않은 죽음 뒤에는 또 다른 문제들이 남아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ASF이 발생했던 지난 2019년, 동물권 단체 케어에서 공개한 영상은 큰 충격을 안겼다. 

살처분 현장에서 산 채로 매장되는 돼지의 모습이 담겼기 때문이다. 당시 케어와 한국동물보호연합은 “파주시청을 찾아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에 따라 돼지들을 가스사 살처분할 것임을 확인받았음에도 통제선 근처에서 감시한 결과 완전히 죽지 않은 돼지를 섬유강화플라스틱(이하 FRP)통에 집어넣는 것을 확인했다”며 파주시장과 담당 공무원을 고발했다. 

2010년 초반에는 대부분 매몰지가 일반매몰 방식으로 조성됐다. 일반매몰이란 부직포·차수비닐 등을 깐 뒤 가축 사체를 땅에 직접 묻는 방식이다. 이 경우 살처분된 사체가 부패하는 과정에서 피나 오염된 액체 등이 포함된 침출수가 유출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2019년 11월 임진강 상류에서 살처분된 돼지의 핏물로 하천이 붉게 변한 사진이 공개되면서 침출수에 대한 문제가 크게 떠오른 바 있다. 

한번 가축을 땅에 묻으면 해당 매몰지는 법정관리기간인 3년 동안 지자체에 의해 운영·관리된다. 이 기간에 예산과 행정인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3년이 지난 후에도 매몰지가 복원되지 않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4월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함태성 교수는 “3년이 경과한 후 매몰지를 파보면 아직 썩지 않은 동물 사체가 여전히 남아있고, 매립 후 관리 미흡으로 침출수가 유출되고 있는 모습들이 발견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은 인근 지역 주민들의 신체,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주게 되고, 오염된 지하수나 토양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렌더링 방식을 도입하거나 유리섬유로 된 플라스틱 저장조에 담는 등의 매몰 방식들로 전환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플라스틱 저장조가 바로 2019년 당시 돼지들이 산 채로 담겼던 FRP다. 이 경우 가축 사체와 발효균 등을 FRP 저장조에 넣어 땅에 묻는다. 농림부와 환경부에서는 “FRP 저장조의 견고한 재질을 감안할 때 침출수 유출 위험은 없다”며  2014년 이후 FRP 저장조 매몰을 늘려갔다. 

또한 렌더링 등을 활용해 비매몰 처리를 확대하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렌더링이란 가축 사체를 분쇄한 뒤 고온·고압으로 멸균 처리하고 미생물과 함께 발효시켜 퇴비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매몰지 조성 등 사후관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전라북도 동물방역과 담당자는 “가축에 대한 매몰처리를 지양하고 렌더링 방법을 통한 살처분 처리를 진행해 유지, 관리 중인 살처분 가축 매몰지가 없다”고 언급했다.

다만 다양한 매몰 방식들이 도입됐음에도 여전히 문제가 존재한다. 침출수 우려가 없다는 정부의 말과 달리, 실제로는 FRP 저장조 변형 및 파손으로 인한 사체 유출이 발생했다. 신재승 대표는 “FRP의 가장 큰 단점은 반드시 소각해서 폐기물 처분해야 하는 것”이라며 “거기서 발생하는 2차 환경오염 물질은 어떻게 하느냐”고 소각으로 인한 오염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커다란 저장조를 태블릿PC 크기 정도로 잘라 소각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분진이 발생하거나 유리성분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매몰하지 않는 렌더링 방식도 능사는 아니다. 이동식 소각장치는 비용도 많이 드는 데다 처리 속도가 느려 많은 가축을 분해처리하기 어렵다. 고정식 렌더링 처리시설은 좀 더 저렴하고 대량의 가축을 처리할 수 있으나 도별로 2~3곳이 있거나 아예 없는 지역도 있다. 이 경우 가축전염병이 확산했을 때 일시 이동중지명령이 내려지면 매몰을 할 수밖에 없다.
 

▲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비추는 산안마을의 계사. 케이지 계사에 비해 너비가 넓어 닭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쾌적한 환경에서 자라 튼튼한 닭들이 횟대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비추는 산안마을의 계사. 케이지 계사에 비해 너비가 넓어 닭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쾌적한 환경에서 자라 튼튼한 닭들이 횟대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동물과 함께 사람도 갈린다

“손끝에 느껴지는 그 감각은 죽을 때까지 못 잊어버려요. 그 녀석(가축) 하고 눈을 계속 마주 보는 것도 괴로워요. 그런데 하긴 해야 됩니다. 더 많이 살처분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해야 돼요. 해야 되는데…”. 살처분 참여 경험이 많은 신재승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위와 같이 말했다. 실제로 살처분 노동자의 정신적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치료 등 사후 관리가 미흡한 점은 여러 차례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위협받는 건 정신 건강만이 아니다. AI는 인수공통전염병인 만큼, 살처분 참여 인력에 대한 방역도 철저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 실제로 방역 당국은 백신 미접종자를 AI 살처분 현장에 투입하지 않으며, 미접종자에 대해 사전 백신 접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백신 접종은 살처분 당일, 심지어 투입 몇 시간 전까지도 이뤄졌다. ‘항체 형성자’가 아닌 ‘접종자’를 투입했다는 것이다. 

신 대표는 “보건소 직원이 미접종자는 따로 주사를 놔주고 타미플루를 한 개씩 준 뒤 바로 살처분에 들어간다”며 실상을 밝혔다. 살처분 인력의 터무니없이 긴 노동 시간도 문제다. 규정된 시간과 제한된 예산을 전제로 진행되는 만큼 현장에서는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주 52시간제’는커녕 ‘노동 혹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살처분이 반복되고 있지만 장기적인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빠른 시간 내에 살처분과 매몰을 끝내는 것이 관건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신속한 집행’에 몰두하다 보니 산 채로 동물을 매장하거나 매몰지를 확보하지 못해 하천이나 거주지 인근에 사체를 묻는 문제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무차별 살처분으로 인한 수많은 가축의 죽음 뒤에도 인간과 환경에 이르기까지 살처분의 악순환은 반복됐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문제 장기적인 대안 필요해

지난 6월 1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가축전염병예방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무분별한 살처분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예 조건 신설 내용은 제외됐다. 해당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현행법은 가축이 전염병에 감염된 경우와 감염될 ‘우려’가 있는 경우의 살처분 및 유예 여부 등의 판단기준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처분권자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어 불필요한 살처분으로 수많은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며 발의 동기를 밝혔다. 그럼에도 농림부는 수용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내놓았고 끝내 최종 법률 개정안에 살처분 유예 조건은 반영되지 않았다.

해마다 반복되는 가축전염병과 살처분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당장의 해결에만 급급한 탁상공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살처분에서 벗어나 발병 원인에 주목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공장식 축산이다. 공장식 축산은 밀집도가 높고 위생관리가 어려워 가축들의 면역력을 저하하기 때문에 전염병이 발생하기 취약한 구조다. 

이에 반해 넓은 계사와 가축동물의 특성을 고려한 동물복지농장 같은 대안농장을 운영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개별 농장주에만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비영리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권종탁 사무국장은 “공장식 축산으로는 40마리를 키울 수 있는데 대안농장에서 같은 면적에 키울 수 있는 닭의 수는 4마리에 불과하다”며 동물복지농장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보상과 정책이 수반돼야 함을 역설했다.

“살처분이 대안이면 가축 전염병이 벌써 종결됐죠. AI나 ASF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것만 봐도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 알 수 있어요”. 살처분이 방역조치로서 실효성이 있는가에 관한 질문에 유재호 대표는 위와 같이 답했다. 권 사무국장은 “먼 미래를 내다보고 대응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지만 가축전염병에 대한 국가의 대처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즉흥적”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정부는 그때그때 닥친 상황에 대응하는 살처분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에서 가축전염병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죽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유정 객원기자 
tlsdbwjd0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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