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사람] 생명과학과 박현성 교수님

지난 6월 ‘제22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시상식에서 학술진흥상을 수상한 생명과학과 박현성 교수를 만나봤다. 
약학대학을 졸업한 이후 과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 운명론을 이겨내는 후성유전학을 연구하게 된 과정을 꼼꼼히 살펴봤다. -편집자주-
 

약학에서 생명과학이라는 학문의 세계로 들어온 경로는
대학에 진학할 때 취업도 생각해야 하는데 고등학교 때는 현실을 잘 몰랐다. 부모님이나 여러 사람의 잣대로 대학에 입학할 때는 진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이 부족했다. 
약학대학을 가기 전 중학교 때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약학대학은 아무래도 직업 교육, 생약, 유기 화학 등 많은 것을 배우기에 버겁고 재미도 없었다. 취업은 할 수 있을지, 즐겁게 살 수 있을지,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일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용감하게 좋아하는 걸 하자고 생각했다. 당시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들어서며 생명과학의 폭발적인 연구가 시작돼 이 길로 들어섰다.

후성유전학이란
DNA 안에는 히스톤이라는 단백질이 말려 있다. 말려 있는 구조는 일어나는 특정 신호에 의해 촘촘한 정도가 정해진다. 이때 헐거워진 부분이 생기면 유전 정보가 들어가 출력하고 외부 신호에 맞춰 유전자가 발현하는데 이를 탐구하는 학문이 후성유전학이다.
어찌 보면 인생은 운명론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운명으로 다 되는 게 아니다. 부모에게 받은 유전 정보는 몸의 80~90%를 구성한다. 선천적인 출발선에서 얼마만큼 더 좋아지고 나빠질지는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결정된다. 유전자 서열은 바꿀 수 없지만 다이어트나 건강한 생활을 하는 노력이 내 몸에 반영된다는 것도 후성유전학이다. 자연과학처럼 생명과학도 기존 최적 시스템에 대한 이해다. 숨은 원리를 찾아내면 디자인이 가능하기에 유전학에서도 유전 법칙을 발견해 세포 치료, 유전자 치료제로 응용할 수 있다.

여성 연구자로서의 삶은 
1982년에 대학에 가고 1997년 임용됐을 때만 해도 여성 차별이 매우 심했다. 당시에는 여성들이 직업을 얻기 힘들었다. (교수 임용을 하고자) 한국에 돌아왔을 때 여성의 학사와 박사 과정 진학률이 증가했지만 사회는 여성 전문가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여전히 안 됐었다. 1997년부터 여성 과학자들이 겪는 차별과 권익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국회 공청회에도 가보고 학회를 열기도 했다. 그래서 2001년에 여성생명과학기술 포럼을 창립했고 2003년에 만들어진 여성과학기술총연합회에서 활동해 왔다. 여성 과학계 단체에서 활동하다 보니 로레알 측에서 연구 업적과 후배 과학자를 위해 일한 업적을 전부 고려해 이번 상도 수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제22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시상식에서 학술진흥상을 수상한 박현성 교수
▲ 제22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시상식에서 학술진흥상을 수상한 박현성 교수

융합응용화학과 초대 학과장은 어떻게 역임하게 됐나
우리대학이 1994년쯤 자연대학이 만들어졌지만 화학과가 없었다. 하지만 물리나 생명과학의 많은 부분이 화학인 만큼 매우 중요하다. 서순탁 전 총장님이 계실 때 융합응용화학과가 생기게 됐다. 화학과 교수님이 계시지 않아 생명과학과 교수님과 환경공학과 교수님들이 모여 융합응용화학과의 교과목도 짜고 지금의 교수님들을 모시게 됐다. 화학이라는 기초자연과학의 한 부분을 우리대학에 도입했다는 것이 굉장히 뜻깊었다.

앞으로의 포부는
내가 임용될 때보다는 사정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고위직에는 여성 임원이 많이 부족하다. 우리 세대는 소수로 남았지만 실력있는 후배 여성들은 고위직으로 나아가고 임용도 잘 되길 바란다. 더불어 우리대학 생명과학과 교수님들도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다. 학교 사정 등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을 도와주고 이제 시작한 후성유전학 중 미토콘드리아 관련 연구를 5년이 남은 정년까지 잘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우리대학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학업설계상담] 등을 진행하다 보면 학생들이 IMF 때보다 더 눌려 있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너무 커 보여 딱하기도 하다. 입시 경쟁 등을 거치며 필요 이상의 불안이 높아지면 주눅이 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인생은 장거리이기에 작전을 잘 짜야 하는데 처음부터 너무 바람이 빠지는 듯하다. 인생은 어느 정도 불확실한 게 사실이지만 그럴 때는 두려움보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자기를 평가하고 바라볼 수 있는 용기에서 출발해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해 줘야 한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오래 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전략을 짜라.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주도적으로 선택하기만 하면 인생을 재밌게 살 수 있다.


신연경 기자 
yeonk486@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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