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우리대학 100주년기념도서관 수요영화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표작’을 주제로 영화를 상영했다. 그중 영화 [인셉션]과 [덩케르크]의 엔딩 크레딧에는 동일하게 등장하는 익숙한 이름이 있다. 바로 음악감독 한스 짐머다. 두 영화에 삽입된 한스 짐머의 음악은 영상과 절묘한 호흡을 맞추며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흔히 영화는 종합예술이라고 불린다. 문학, 공연, 미술, 음악이 종합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중 음악은 청각적 요소를 담당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하고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영화음악에 대해 알아봤다.

영화음악, 도구에서 배경이 되다

영화음악의 역사는 무성영화의 등장과 함께 시작한다. 영화사의 시초로 알려진 1895년 [기차의 도착] 무성영화는 피아노 연주와 함께 상영됐다. 마치 오페라나 연극처럼 스크린 위에 영상을 돌리고 옆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영상과 음악을 공존시켰다. 

그러나 당시 영화음악은 다른 영화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영상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또한 같은 공간 안에서 배우와 연주자가 공명하며 작품의 깊이를 자아내는 연극과 다르게 반복되고 변주 없는 영상과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지는 실제 연주자가 협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즉 영상은 감독의 의도대로 흘러갈지언정 음악은 언제든지 극장 상황과 연주자에 따라 달라져 감독의 본래 연출 의도와 다르게 흘러갈 우려가 있었다. 영화계는 이러한 문제점을 정형화된 악보 배급을 통해 해결하려 했으나 곧 유성영화가 등장하며 무성영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유성영화 등장 이후 할리우드와 영화계의 황금기가 찾아왔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할리우드의 황금기에는 벌어들인 막대한 수입을 바탕으로 영화음악을 전담하는 부서가 창단됐다. 

이 시기 영화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카사블랑카]의 음악감독 맥스 스타이너, [시민 케인], [현기증]의 버나드 허먼 등 뛰어난 음악감독들이 데뷔했다. 그들이 영화음악의 초석을 다진 뒤 1950년대까지 이어진 할리우드 황금기에는 최고의 뮤지컬 영화로 찬사받는 [사랑은 비를 타고]가 제작되기도 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마일스 데이비스 등 뛰어난 재즈 음악가들이 영화음악계에서 활약했다.

1950년대부터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인해 할리우드의 황금기가 막을 내렸다. 극장 수요 감소로 영화계는 위기를 맞았으나 1967년 영화 [졸업]에 수록된 음악이 엄청난 수익을 내는 등 영화에 삽입된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상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1970년대 이후 음반 사업을 시작한 할리우드는 기존에 사용하던 오케스트라에서 벗어나 전자악기와 스튜디오 작업 등을 활용하며 혁신적인 시도를 이어 나갔다.
 

▲ 100주년기념도서관 수요영화제에서 학우들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 100주년기념도서관 수요영화제에서 학우들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영화음악의 새 국면, 두 거장

1970년대부터는 클래식, 재즈를 거쳐 팝 스타일의 영화음악이 등장했다. 다양한 장르를 거친 영화음악은 유행하는 하나의 장르에만 국한되는 작곡에서 벗어나 영상과 연출에 어울리는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이때부터 현대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저명한 작곡가들이 등장한다.

지난 7월 음악감독 엔니오 모리꼬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가 개봉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등 수많은 서부영화와 함께 영화음악 세계에 뛰어들었다. 과거 오케스트라를 이용해 음악을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작곡계에서 그는 휘파람, 하모니카, 채찍 등을 이용해 미서부 환경의 붉은 배경을 청각적으로 그려냈다. 

이후 영화 [미션]에서 ‘가브리엘의 오보에’, 영화 [시네마 천국]의 ‘사랑의 테마’를 작곡하며 대중들에게 스타 음악감독으로 각인된다.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 엔니오 모리꼬네는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한 테마선율을 바탕으로 작품 안에서 변주를 주며 영화 사운드트랙의 통일성을 극대화했다. 그에게 제57회 골든 글로브상을 안겨준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The crisis’는 불협화음을 통해 주인공의 불안정한 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수요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인셉션]과 [덩케르크]의 음악감독 한스 짐머는 1991년 작 [델마와 루이스]부터 지난 2021년 개봉한 영화 [듄]까지 수많은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아오며 활발히 작곡하고 있다. 영화 [레인 맨]처럼 주로 신시사이저*를 활용해 작곡한 한스 짐머는 멜로디의 반복과 타악기 리듬의 단순 반복을 통해 풍성한 음악을 작곡했다. 

이후 [라이온 킹]에서는 오케스트라를 사용한 곡을 다수 작곡하며 전자음악과 오케스트라의 융합에 성공해 제67회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신시사이저만 사용했을 때와 달리 오케스트라를 활용했을 때에는 연주자들의 몰입과 해석이 작품 속에 녹아들면서 보다 풍부하고 깊은 음악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 제79회 아카데미상 공로상을 받은 엔니오 모리꼬네. 그의 영화음악 데뷔 46년 만의 일이다. (출처: 영화사 진진)
▲ 제79회 아카데미상 공로상을 받은 엔니오 모리꼬네. 그의 영화음악 데뷔 46년 만의 일이다. (출처: 영화사 진진)

음악감독 손끝에서 선율이 흘러나오다

음악감독은 작곡뿐만 아니라 어떤 구간에 음악이 필요할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떻게 형성할지를 고민하며 영화에 삽입되는 모든 음악을 제작하고 감독한다. 그들은 영화감독에게 연출법과 연출 의도를 듣고 본격적인 영화 제작 전 시나리오를 분석해 음악적 스타일을 미리 설정한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 [리틀 포레스트]의 이준오 음악감독은 “영화에 따라 곡을 쓰는 기간보다 어떤 컨셉의 음악에 어떤 악기를 사용할지 결정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작곡할 때는 감독만의 스타일과 상황에 따라 작곡 방법이 달라진다. 영화 [클래식], [올드보이]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동아대학교 음악학과 최승현 교수는 “현재는 가상악기를 활용해 시범음악을 만들고 이후 실제 오케스트라를 통해 녹음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영화 제작 전 테마 음악을 우선 작곡한 뒤 영화편집본을 보며 변주곡처럼 활용하기도 하며 영화 제작 중반부에 영화편집본을 보며 즉흥연주를 통해 작곡하기도 한다. 영화에 동화되는 음악 작곡을 위해 언제나 새로운 시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도 음악감독에게 필요한 태도다. 

이준오 음악감독은 [더 테러 라이브]의 사운드트랙을 회상하며 “당시에 영화음악은 현악기를 사용한다는 암묵적인 공식이 있었다”며 “그럼에도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영화감독님과 함께 강렬한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음악을 작곡했다”고 전했다.

최승현 교수는 “감동적인 영화의 한 장면과 함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보는 예술이면서 동시에 듣는 예술이다. 앞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면 영화음악의 매력에도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신시사이저: 소리를 전자적으로 발생시키고 변경시키는 전자 악기


전혜원 수습기자 
plohw06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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