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ckeck

인문학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소설과 자기계발서 정도를 제외하면 인문학은 가깝지도, 친숙하지도 않다. 『밥 먹여주는 인문학』은 현학적이거나 현실과는 거리가 먼 내용의 인문학 서적과 다르다. 이호건 작가는 여러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인생, 감정, 관계, 혁신, 생각에 대한 논의를 주제로 독자에게 적절한 인문학적 해법을 제공한다. -편집자주-

 

요즘 것들은 말이야

최근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나 때는 말이지”라며 세대를 구분 짓고 특정 세대를 지적하는 갈등이 많아졌다. 우리는 왜 다른 세대를 납득할 수 없는 것일까.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특정 시대에서만 통용되는 지식이나 규칙을 ‘에피스테메’라고 부른다. 각 세대는 본인이 태어난 시대의 문화적 동일성인 에피스테메를 받아들인다. 이때 각 세대의 에피스테메가 단절돼 있기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최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맞춰 에피스테메의 생성 주기도 더욱 빨라졌다. 대학생인 우리는 고작 몇 살 어린 청소년의 SNS 유행과 언어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게재하는 틱톡 댄스 챌린지와 줄임말 신조어를 비난하고 희화화하는 것이 그 예다. 

푸코는 에피스테메를 고집하기보다는 ‘바깥의 사유’를 중시해야 함을 강조한다. 서로가 상대방의 에피스테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에피스테메를 인지하는 것이 심해진 세대 간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첫 발걸음이다.

고독은 나쁜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말이 무색하게 현대 사회는 개인주의와 개인의 고립이 심해지고 있다. 작가는 물리적으로 혼자인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고독’이며 정신적으로 혼자인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외로움’이라고 정의한다. 둘 중 고독은 긍정적인 상태일 수 있다.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고독은 사람들이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하게 해서 타인과 소통할 의미와 기반을 만들어주는 숭고한 시간이다. 타인과 함께 있지 않을 때 진솔한 자기 내면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우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이하 SNS)가 소중한 고독의 기회를 놓치게 한다고 주장한다. SNS를 통한 자유로운 소통으로 외로움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더 의식하게 되면서 진솔하게 자기성찰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고독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기호로의 소통

종종 상대가 속내를 시원하게 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연인 사이에 상대가 화가 난 이유를 말해주지 않고 알아맞히길 바라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비언어적 표현인 ‘기호’로 상대방의 진의를 알아내야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감독이 작전을 지시할 때 사인을 보내는데, 선수가 감독의 사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작전에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처럼 상대가 보내는 기호를 포착하지 못하거나 잘못 해석하면 곤란한 일이 발생한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진실은 친화성이나 선한 의지를 통해 찾게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진실은 비자발적인 기호로부터 누설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상대방의 비자발적인 기호는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나 반응으로 누설되는 진실을 잘 살펴야 알 수 있다. 부모가 말하지 못하는 아기의 미세한 기호에 반응하는 것은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을수록 기호는 잘 보인다. 

약점을 드러내자

우리는 약점을 가리려고 한다. 대표적으로 외모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부각하기 위해 화장과 옷, 장신구에 신경 쓰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에 따라, 생존과 번식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러나 진화학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유리하다. 동물의 신체는 단단한 뼈와 연약한 살로 구성돼 있다. 갑각류는 뼈로 살을 감쌌고, 척추동물은 살로 뼈를 감쌌다. 결과만 놓고 보면 더욱 고차원적인 진화를 이뤄낸 것은 약점인 살을 드러낸 척추동물이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생명 전체의 진화에서도 최대의 성공은 최대의 위험을 무릅쓴 것들의 몫이었다”고 말한다. 약점을 숨기면 일시적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는 않는다.

불교 시인 김달진은 “회피하는 한, 두려움은 영원하다”고 이야기한다. 영어 실력을 늘리려면 창피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영어 회화를 시도해야 한다. 약점을 숨기기보다 드러내고 단련한다면 그로부터 자유로워질뿐더러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밥 먹여주는 인문학』은 철학, 문학, 언어학, 사학 등 다양한 인문학적 자료의 해석을 통해 현대인의 고민에 유용한 나침반을 제공한다. 그럼으로써 인문학적 공부가 우리의 삶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질 수도 있음을, 예상치 못한 즐거움의 원천이 될 수도 있음을 일깨워준다.  


정재현 기자 
kai71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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