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의 서재

케인즈(1883-1946)와 하이에크(1899-1992)는 거시경제학계의 두 거인이다. 실제로 케인즈의 키는 198cm이고 하이에크의 키는 186cm이다. 

케인즈와 하이에크가 활동하던 시기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어지러운 시기였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2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표출되던 시기였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으로 많이 지적되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착취와 이에 따른 빈곤 문제이다. 이로 인해 계급 갈등이 심화되고 공산주의가 대두하였다. 둘째는 19세기 후반의 중화학공업을 위주로 한 산업혁명으로 대기업이 출현하고 이들의 독과점에 따른 폐해이다. 셋째는 산업의 복잡 다기화에 따른 산업간 연관 관계 강화와 화폐 금융 등 신용경제의 발달에 따라 경기변동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이는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불황의 문제를 낳았다.

불황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전통적인 고전파 경제학에 의해 제시되지 못하였다. 고전파 경제학에 따르면 노동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으로 완전고용 상태에 있다. 그리고 이자율의 조정에 의해 저축과 투자가 일치하여 재화시장의 균형이 이루어진다. 물가 수준은 화폐수량설에 따라 화폐공급량에 비례하여 결정된다. 따라서 불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시장에 맡기고 기다리면 자연히 불황은 치유된다. 이러한 고전파 이론은 1930년대의 장기 불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장기 불황에 대한 설명과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은 바로 케인즈 였다. 케인즈는 신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케인즈와 그의 친구들은 금욕적인 신교 윤리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이에 대한 탈출구를 마련해준 것이 무어의 이상적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 철학은 그의 경제 정책관에 영향을 미쳤다. 정책의 득과 실을 따져 득이 실 보다 크면 적극적으로 그 정책을 시행하자는 것이 그의 정책관이었다. 소위 개입주의 정책관이다. 기업의 투자 의욕이 위축되면 투자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재화시장에 수요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이는 노동시장에서의 고용 감소로 이어져 불황이 나타난다. 유효수요의 부족은 임금 물가의 하락이 아니라 고용의 감소로 이어진다. 재화시장의 불균형이 임금 물가와 같은 가격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소득이나 고용과 같은 수량변수에 의해 조정된다. 따라서 불황을 피하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정책을 사용하여 경제의 신뢰도를 높이고 기업의 투자를 증진시켜야 한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케인즈의 정책관과 경제이론에 반대하였다. 정부는 정책을 기획하고 득과 실을 따질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한다. 효과적인 정책을 기획하고 이의 득실을 따지려면 공간적으로 전 우주적인 파급효과를 알아야 하고 시간적으로는 정책시행일 이후부터 영원까지의 파급효과를 알아야 한다.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함부로 정책을 사용하여 개입하는 것은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마치 의사가 소독하지 않은 손으로 수술하여 상처를 악화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과도 결을 같이 한다. 결국 개입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하이에크는 인위적인 것(정부 정책)을 싫어 하고 자연발생적인 제도(종교, 관습, 시장)를 선호한다. 자생적 질서의 선호는 행동에 소극적이게 하고 문제를 방치하게 할 위험이 있다. 병을 치료할 때 수술이나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히 낫기를 기다리거나 민간 전통요법을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케인즈나 하이에크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으므로 양자를 적절히 절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케인즈의 주장대로 이론과 정책의 논리가 탄탄하고 득실을 따졌을 때 득이 확실한 경우에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되 그렇지 않으면 하이에크의 주장 대로 우리의 인식론적 한계를 자각하고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제목| 케인즈 & 하이에크: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저자| 박종현 
출판| 김영사
경영경제도서관 청구기호| 320.1 박614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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