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민(국문 21)

자동인형, 인조인간, AI와 같은 것들을 배울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많은 시간, 깊은 사유를 통해 오랫동안 인류가 인류에게 던져온 식상할 수도 있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것의 역사와는 별개로 지금까지 정의되지 못한 채 추상화된 어딘가를 부유하는 듯하다. 인간이란 무엇이냐는 그 식상한 질문에 대해서 메리 셸리의 SF소설 ‘프랑켄슈타인’이 나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먼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해당 작품은 인조인간의 발명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어릴 적부터 유복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랐으며, 이를 바탕으로 쌓은 자신만의 지식으로 ‘죽지 않는 인간’을 창조해내기 위해 연구에 몰두한다. 

그렇게 탄생한 인조인간, 작품 내에서의 명칭으로는 괴물은 자신을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혐오하고 죽이고자 하는 창조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주변 인물들부터 시작해 그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선사한다. 끝내 둘은 북극으로 향하게 되고, 두 인물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글이 다루고자 하는 논지를 관통해 ‘프랑켄슈타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빅터와 괴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적 구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작품 초반에는 창조자 ‘빅터’와 피조물 ‘괴물’로 형상화되는 이 둘의 관계는 북극이라는 장소에 가까워질수록 그 상하적 위계질서가 뒤집히는, 이른바 주객전도의 구도가 드러난다. 

빅터는 괴물의 의도에 따라 시종일관 휘둘리는 태도를 보이며 그렇게 괴물에 의해 고안된 북극이라는 무대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이 대목에서 인간을 특정하는 조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이성이라는 복잡한 개념으로 설명되는 인간의 조건적 개념은, 빅터와 괴물의 관계에 한해서는 과연 누가 인간이고 괴물인지에 대한 판단이 불분명하게 다가온다. 

작품 내에서 묘사되는 빅터 역시 비이성적 존재는 아니다.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나름의 지식을 축적했으며 스스로 죽은 인간의 시체로 생명을 탄생시키겠다는 포부까지 지닌 빅터의 이성적 측면은 괴물을 조우하고 난 뒤 감정적 측면이 강조되면서 약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만약 인간이 철저하게 이성에 의해 규명되는 존재라고 명명한다면, 빅터와 괴물 중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무엇인가?

과거 메리 셸리가 스위스 제네바 근방에서 여름을 나며 구상했던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이 되려는 이야기’는 이제 상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불온전한 생명체에 불과한 인간이 AI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되는 날을 내심 걱정하게 된다. 여러 사회적 분야에서 과도기적 상황을 겪으며 곳곳에서 불만과 불안의 목소리가 섞여 나오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정말로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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