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소시] 소사소시는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보냈던 장소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며 기대한 순간이 있다. 마침내 입성한 대학교와 입사하고픈 회사의 거리를 인파 속에 섞여 걸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저마다 조급함과 피로로 점철된 얼굴을 하고 있다.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지만 모두가 그렇다는 걸 알기에 뒤처지지 않으려 무리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날이 오기는 할지, 잘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 모든 해답이 있을 것만 같은 장소가 있다. 
 

서울에서도 유동 인구가 특히 많은 종로, 그 한복판에 조계사가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거대한 대웅전과 500년 이상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웅장한 소나무가 눈에 띄었다. 나무에 걸린 연등 아래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와 함께 솔솔 부는 바람을 맞으니 마음속 소란스러움이 사라지는 듯했다. 법복을 갈아입고 절 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속세와 떨어진 것 같은 기분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향냄새가 퍼지는 탑 아래는 연꽃과 저마다의 소망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나도 향을 하나 들고 불상 아래를 돌며 사념을 정리하고 소원을 빌었다. 

스님의 염불과 함께 108배가 시작되자 갑자기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처럼 해방을 바라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닌, 진정한 해방 속으로 말이다. 함께 온 친구와 법복을 입은 채 절을 나섰다. 낯선 차림새의 우리를 흘끗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모른 척하며 묘한 일탈감에 취해 거리를 활보했다.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청계천에서 흘러가는 물길에 발을 담그고 고민을 나눴다. 힘들었던 일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고백했고 격려로 서로를 보듬었다. 까맣게 물든 하늘 아래 많은 사람이 물가에 앉아 각자의 소중한 사람과 대화하고, 웃음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조급하지 않게 느긋함을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인생은 결코 고통과 구원이라는 두 갈래로 나눠지지 않는다. 여러 복합적인 감정과 순간의 집합체다. 오직 행복만을 추구하며 지금이 행복하지 않다고 힘겨워하거나, 고통과 완전히 분리되려 노력하는 것은 결국 의미 없는 일이다. 힘든 순간에서도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면 멀리 가지 않아도 행복이 언제나 곁에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신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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