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람한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조현병에 걸린 두 아들의 아버지이자 둘째 아들을 자살로 잃은 퓰리처상 수상자 론 파워스의 저서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의 원제다.

최근 서현역 흉기 난동과 대전 교사 피습 사건 등 다수의 칼부림 사건의 범인이 중증정신질환자였음이 알려지며 그들에 대한 혐오와 편견 또한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혐오는 정신질환자가 초기에 치료받기를 꺼리게 만들며 결국 만성적인 중증정신질환으로 이어져 그 피해와 치료를 온전히 개인과 가족이 감당하게 만든다.

지난 8월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이하 의사회)는 성명문을 통해 중증정신질환자의 치료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했다. 의사회가 역설하는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가 무엇인지와 그 필요성을 알아봤다.
 

적색등 켜진 우리 사회 정신질환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로 대표되는 중증정신질환은 정신적 문제로 인해 사회 및 직업적 기능이 현저히 손상돼 유병 기간이 긴 정신질환이다. 중증정신질환자는 생활 기능에 전반적인 어려움을 지니기에 투약 관리를 받아야 하며 일상생활에도 도움이 필요하다.

잇따른 이상동기 범죄에 정신질환이 연루되며 사회적 편견이 극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더 이상 타인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21년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발표한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정신장애 평생 유병률은 27.8%다. 우리나라 국민 4분의 1은 살아가면서 한 번은 정신장애를 겪게 된다는 뜻이다. 

정신장애뿐 아니라 중증정신질환자도 증가했다.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발표한 「2020 서울시정신건강지표」(이하 건강지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F코드** 수진자***는 14만 6357명이며 조현병과 분열형 및 망상장애 수진자는 4만 7310명이다. 서울시 인구 10만 명당 조현병과 분열형 및 망상장애 치료 수진자는 지난 2019년 547명으로 2018년 534.8명에 비해 12.2명 증가했다. 또한 제1형 및 제2형 양극성 장애의 경우에는 지난 2019년 382.8명으로 2018년 330.8명에 비해 52명 증가한 추세다.

정신질환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과) 및 치료시설이 갖춰진 병동은 줄어들고 있다. 의사회는 「중증정신질환 치료제도의 개선을 위한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성명서」에서 “코로나19 시국에 급격하게 진행된 시설 규정 강화로 지난 약 3년 동안 다수의 정신과 병원이 경영난으로 폐원했다”며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치료받지 못한 채 사회에 방치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3월 실시된 정신의료기관의 병상 간 거리를 1.5m 이상으로 하는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 시행 이후 우리나라 정신과 병상은 17.7% 감소했다.

과도한 부담을 떠안는 보호의무자

중증정신질환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하기도 하며 조기 치료하지 않는다면 만성화돼 조절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정신질환은 조기 치료가 필수적이나 현재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과 치료는 그들의 보호의무자(이하 보호자)인 가족이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중증정신질환자의 보호자가 짊어지는 책임은 평범한 가정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가볍지 않다. 서울 소재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위해선 한 달에 기본적으로 수십만원이 들고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필요하다. 국가에서 정신질환 치료비 지원 사업을 통해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으나 실제 필요한 금액을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1인당 지원되는 금액 최대한도는 연간 450만원이며 발병 초기 정신질환자나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로 내원한 정신응급환자의 경우 중위소득 120% 이하만이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환자를 간호하는 보호자들의 심적 부담감도 가볍지 않다. 조현병 투병 중인 어머니가 있는 A씨는 대학과 구직을 포기하고 20대의 모든 순간을 간호에만 몰두했다.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하고 대학 시절의 낭만까지 어머니를 위해 내려놓았다. 질병에 대한 부족한 정보와 불안감, 종일 중증정신질환자를 지켜보아야 하는 체력적 한계에도 부딪혀 왔다. A씨는 “어머니께서 알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마다 답답했던 적이 많았다”며 “가끔은 자의가 없어지는 질병이 무섭기까지 했다”고 심정을 전했다.

국가책임제, 국가는 어떻게 중증정신질환자를 도울 것인가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존속살해 사건 46건 중 12건이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다. 국가책임제는 중증정신질환자의 보호자가 무책임하게 환자를 방치하게 만드는 제도가 아니다. 정신질환자의 조기 치료를 보장해 만성적 중증정신질환으로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환자와 보호자를 불가피한 정신질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는 현재 중증정신질환자 보호자에게 주어진 환자의 치료와 간병에 대한 책임을 국가로 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크게는 ‘사법입원제’ 도입과 재활 및 거주, 사회 복귀를 위한 인프라 확충으로 대표된다.

현재 『정신건강복지법』에서는 보호자 2명 이상과 정신과 전문의의 판단으로 중증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정신질환자 입원 결정 및 과정의 부담을 오로지 보호자가 감당하게 한다. 진단을 위해 전문의에게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지지 관계여야 마땅한 환자와 보호자의 관계를 악화, 더 나아가 관계를 단절시키기도 한다. 

보호자가 혈연,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에만 해당하는 것도 문제다. 의사회 이사로 활동하는 정신과 장광호 전문의는 “핵가족을 넘어 출산율과 혼인율이 최저점을 찍고 1인 가구가 일반화되는 핵개인화 사회에서 보호 의무를 수행할 전통적 의미의 가족이 남아있지 않다”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폐지해 보호자의 사회경제적 부담을 덜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질환자가 타인을 해칠 경우 강제로 치료받게 하는 ‘외래치료명령제’ 역시 수정이 필요하다. 현재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기 위해서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전문의 진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시행하는 행정 입원 △경찰과 의사 동의로 삼 일만 입원하는 응급 입원의 세 가지 방식만이 허용된다. 그러나 지난 2020년 기준 외래치료명령 시행은 28건으로 약 4만 명에 달하는 중증정신질환자 수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 

사실상 보호자가 환자를 설득해 자의적으로 입원하게 유도해야 치료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입원 설득에 성공했다고 한들 최근 3년간 전국적으로 약 9천 개의 병상이 사라진 상황에서 보호자는 치료의 첫걸음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위해 대기하고 진료비를 감당하며 점차 시간적·경제적 여유를 잃고 생계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사법부는 보호자와 정신보건 전문가, 담당 공무원 등이 신청하면 법관의 결정으로 중증정신질환자를 입원하게 하는 사법입원제를 검토 중이다. 장광호 전문의는 “입원 결정에 있어 인권이나 절차적 정당성도 중요하지만 의학적 판단에 대한 존중 역시 필요하다”며 “환자의 비자의적 입원을 국가에서 책임지고 법률적 테두리 안에서 인권적 치료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시선

조현병 환자의 존속살해에 대한 「울산지방법원 2019.10.25. 선고 2019고합232 판결」에서 박주영 판사는 “피고인은 어머니를 살해한 잔혹한 살인자인 동시에 어쩌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정신질환으로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해 준 어머니를 잃은 피해자일지 모른다”며 “누구도 신경 써 주지 않는 그 미친 사람이 바로 내 아이일 수도 있다”고 썼다.

중증정신질환자를 위한 복지 제도와 법률 개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필수적인 것은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의 공감이다. A씨는 본인과 같이 중증정신질환자 가족을 간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족이 아픈 것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며 “그럼에도 끝까지 본인의 마음을 지켜 스스로를 위로하고 가족과 잘 지내길 바란다”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진 책임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양극성 장애: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되는 정신질환
**F코드: WHO가 정한 ‘정신질환 국제질병분류’로 정신과의 질환 코드
***수진자: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는 사람


전혜원 수습기자 
plohw06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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