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현 부국장
정재현 부국장

‘나’다운 것을 인증하려면 과연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여러분은 여러분과 거의 똑같은 도플갱어가 눈앞에 생긴다면, 진짜 ‘나’는 누가 될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준 소설이 하나 있다. 바로 윤이형 작가의 『큰 늑대 파랑』이라는 소설집에 있는 20페이지가량의 「결투」라는 작품이다. 

작품 속 세계는 현대 한국과 거의 비슷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작중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이 ‘분열’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분열은 어떤 사람이 자는 도중 자신과 똑같은 사람, 즉 도플갱어가 몸에서 생성되는 현상이다. 도플갱어는 ‘분리체’라고 칭해지며 외모, 성격, 기억, 의식 등 거의 모든 요소가 본체와 똑같다. 분열 현상이 초래할 혼란을 대비해 국가는 대책을 준비했는데, 바로 본체와 분리체 중 한쪽이 죽을 때까지 ‘결투’하게 해 이긴 쪽이 살아남고 죽은 쪽은 ‘이물질’로 분리돼 폐기되는 것이다. 

작품 내 주인공은 결투장에서 일하며 생존의지가 더 강한 쪽이 보통 결투에서 승리한다고 말한다. 나라는 것을 국가에게든 개인에게든 인정받으려면, 즉 나에 대한 ‘존재증명’에 성공하려면 또 다른 나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증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전술했듯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생존의지가 존재증명의 유불리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존의지만이 존재증명의 척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약 생존의지가 강하다면 결투를 택하지 않고 도망치는 게 보통 합리적인 결정이다. 기자는 생존의지보다 ‘독자적 존재로 남고 싶은 욕망’이 존재증명의 척도라고 생각한다. 작중 최은효라는 인물은 분열을 거듭할수록 자신과 소름 돋을 정도로 같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다른 분리체에 대한 혐오감과 불편함을 키운다. 게다가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 결투에서 최은효는 분리체를 아주 잔인하게 죽인다. 

나를 완전히 대체하거나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는 누군가가 생긴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인정하기가 싫다. 사회적 지위, 가족 관계, 교우 관계 등 나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어지럽혀질 위기에서, 그들을 더욱 공고히 내 품으로 가져오고 혼란의 원인을 더 확실하게 배척하고 싶은 쪽이  「결투」에서의 존재증명에 성공할 것으로 기자는 생각한다.

물론 이런 마법 같은 일이 현실에서 나타날 리는 없다. 그리고 설령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작품처럼 국가가 비인도적인 방식을 채택했다간 역풍이 불 것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나를 증명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고민의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는 언제나 나의 내면적 성장을 이끌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화, 소설, 만화, 시, 드라마는 자아를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해당 작품에서 던지는 질문은 항상 우리를 사색으로 인도한다. 어쩌면 인류는 본인을 끝없이 규명하고 논증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재현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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