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거리를 걷다 보면 한국어를 대체한 여러 외국어가 자리 잡고 있다. ‘스마트폰’을 키고 ‘버튼’을 눌러 ‘메시지’를 보내는 것. 우리의 일상을 설명하는 단어들조차 외국어로 설명된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의 문화적 발전에 저해를 가한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비판이 제기된 배경과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외국어는 우리 사회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이를 억제하려는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끝으로 바람직한 한국어 사용을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알아봤다.
 

▲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조성사업’으로 기존 영어로만 표기되던 간판에 한국어가 추가된 모습
▲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조성사업’으로 기존 영어로만 표기되던 간판에 한국어가 추가된 모습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한국

우리의 말글살이에는 외국어가 깊게 스며들어 이를 사용하지 않은 문장을 찾기 어렵다. 식당에 들어가 식사하려 할 때도 외국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또한 몇몇 식당이나 카페는 외국어조차도 변형해 ‘외계어’를 탄생시켰다. 지난달 9일 KBS 9시 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 지역 가게 간판의 20% 이상이 외국어였으며, ‘브릭 레인’, ‘비튼 크림’, 그리고 ‘M.S.G.R’과 같은 외국어와 외계어로 구성된 메뉴판 또한 다수 확인됐다.

정부와 언론 또한 외국어 사용을 망설이지 않는다. 지난 2017년 국립국어원이 정부 45개 기관을 대상으로 보도자료를 점검한 결과 외국어를 남용한 경우가 약 57%에 달했다. 공공기관 공식 보도자료에 사용되는 공공언어에 외국어가 다수 포함돼 국민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을 얻기 어려운 정책과 기사가 된 것이다. 

『국어기본법』 제14조에는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춰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에서는 『국어기본법』을 어기며 외국어를 남용하는 실정이다. 대중들은 정부가 사용한 외국어를 그대로 인용해 사용하기도 한다. ‘모니터링’이라는 단어의 경우 정부가 공식 석상 등에서 자주 사용하며 대중의 입에도 많이 오르내리게 됐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대한 이유로 청년 세대는 ‘전달성’을 꼽는다. 국립국어원의 「2020년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 따르면 외국어 사용 이유에 대해 청년 응답자의 41.2%가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자기 뜻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컴퓨터’, ‘디지털’, ‘온라인’처럼 우리말로 쉽게 대체할 수 없거나 많이 사용하며 익숙해져 있기에 해당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자기 뜻을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조사에서 외국어 사용 이유에 대해 ‘능력 있어 보이기 때문’과 ‘세련된 느낌이 있어서’가 각각 22.9%, 15.7%를 차지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청년 세대의 외국어 사용에 단지 전달성 향상이라는 목적 외에도 ‘심미성’과 ‘과시적 측면’이라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 메뉴판이 영어로만 구성돼 있어 읽을 때 어려움이 있다.
▲ 메뉴판이 영어로만 구성돼 있어 읽을 때 어려움이 있다.

지켜내야 할 한국어와 한글

외국어가 남용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언어순화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언어순화운동은 언어 내에 있는 외국어 요소들을 고유어 요소로 재정리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이는 언어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 우리말의 전통성을 회복하는 것, 우리말을 바람직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 등의 구체적 이념을 내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40년대 미군정청 산하로 조직된 국어정화위원회를 시작으로 현재 교육기관, 시민단체, 지자체 등의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대를 거치며 언어순화운동의 대상 또한 변화했다. 

40년대 언어순화운동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문화통치로 인해 우리말에 잔재한 일본어 단어들이 주된 대상이었지만 현재는 영어 단어가 순화 대상으로 지목돼 관련 활동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기스’를 흠집으로 순화하고 ‘리플’을 댓글로 순화하는 등 대중들이 적응해 사용하게 된 단어들이 탄생했다. 

지자체에서도 언어순화운동을 위해 여러 사업을 기획 중이다. 그중 종로구에서 진행한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조성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북촌 한옥마을 거리를 찾는 이들에게 한글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구상됐다. 현재 율곡로 일대에 이어지는 260m 구간에 약 50개의 한글 간판이 내걸려 있고 지난 1월 해당 사업 확대로 국내외 방문객에게 한글 체험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어와 한글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여러 기업을 통해서도 이뤄지고 있다. 네이버는 세종의 백성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맏뜻(처음 먹은 마음이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으로 재해석해 한글의 초심과 역사를 되짚고 함께 지켜나가자는 취지의 ‘한글맏뜻’ 캠페인을 진행했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외국어와 비속어 사용을 중단하고 우리말만을 사용해야 하는 부루마불 훈민정음 특별판을 판매하기도 했다. LG유플러스 또한 우리말 지키기에 동참했다. LG유플러스는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나 한자식 어투, 외래어를 순화 대상으로 선별해 5천여 개에 달하는 단어를 검수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 「고객 언어 가이드북」을 발간했다. 

바람직한 언어 사용을 위해

외국어 사용이 급증하는 흐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문화적 고유성이 파괴되고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는 “현실적으로 외국어가 혼용된 언어를 사용하는 풍토를 억제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외국어 사용을 지양하고 한국어를 살리려 노력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존의 언어를 대체하는 새로운 언어가 등장해 사용될 때 이에 무지한 국민의 권리는 제대로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이다. 노인을 위한 노인정의 이름이 ‘시니어 클럽’으로 돼 있어 찾지 못하는 노인과 외국어와 외계어로 이뤄진 메뉴판을 보고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소비자의 모습이 그 예다. 

이 대표는 “정부와 언론이 사용하는 공공언어의 경우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며 “국민 전체가 막힘없이 알아듣고 이해해야 하는 내용이 전달되지만 외국어를 사용하며 여러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된다”고 밝혔다. 

반대로 세대가 새롭게 구성되고 사회가 변화한 결과로서 한국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 목정수 교수는 “젊은 층의 외국어와 외래어, 신조어의 사용은 한국어의 긴 역사를 보면 그다지 큰 변화나 유일한 현상이 아니다”며 “이는 현세대가 자신들만의 특성을 사회적으로 표현하는 방법과 관련된 문제”라고 전했다. 

한글을 사용해 온 580년이라는 긴 역사에 현 양상을 비춰 봤을 때 이는 시대별로 늘 있었던 언어의 양식 변화라는 것이다. 이어 목 교수는 “새롭게 탄생한 문화 양식이 모든 세대에 걸쳐 긍정적 호응을 얻게 돼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면 우리나라 언어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글과 한국어를 두고 흔히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문자와 언어라 칭하는 것과 같이 젊은 층도 기존의 한국어를 이어서 자신들만의 얼을 담는 도구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한국어 사용을 위해 상반된 두 입장 모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목 교수는 “기존 언어로 담아내기 어려운 변화무쌍한 현실 세계를 젊은 세대의 새로운 발상을 통해 새로운 언어로 담아낼 수 있게 된다면 이또한 순기능을 가질 수 있다”며 “외국어 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한국어를 근본적으로 훼손하지 않는 이상 막을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 

바람직한 한국어 사용은 변화를 존중하고 새로운 얼을 형성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세계적 흐름에 맞춰 외국어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바림직하지만 당장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부작용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대표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화 발전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민 하나하나가 모두 문화 발전의 주역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우리말을 사용하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발전을 위해 우리는 한국어에 대해 ‘옛날 것’이 아닌 ‘우리 것’임을 자각하고 살아가는 국민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화의 흐름을 따라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우리 것 또한 잃지 않으려는 의식을 가져야 할 때다. 


김동연 수습기자 
dyk08260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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