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이후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가 “지금은 전쟁의 시간”이라고 발언했고, 현재는 지상전으로까지 번져 지난 3일 기준 가자지구에서만 약 9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4번의 중동전쟁뿐만 아니라 지난 2014년 가자지구 분쟁과 2021년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까지, 그들의 땅에는 왜 끊임없이 분쟁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역사와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하 이·하 전쟁)의 원인, 전쟁에 얽힌 국제사회의 이해관계를 살펴봤다.

▲ 1947년 이전 팔레스타인 영토(초록색)는 UN의 ‘팔레스타인 분할안’ 이후 절반으로 감소. 이후 4차례의 중동 전쟁 이후 현재는 대부분 이스라엘(흰색)의 영토가 됐다.
▲ 1947년 이전 팔레스타인 영토(초록색)는 UN의 ‘팔레스타인 분할안’ 이후 절반으로 감소. 이후 4차례의 중동 전쟁 이후 현재는 대부분 이스라엘(흰색)의 영토가 됐다.

하나의 땅, 두 개의 국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주요 원인은 그들의 영토다. 기원전 1천 년경 유대인은 가나안 땅(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했으나 약 1세기 만에 분단됐다. 100년 무렵 로마의 지배를 받은 이스라엘은 2번에 걸친 유대 전쟁에 실패한 이후 전 세계로 흩어졌다. 유대인들이 사라진 땅은 637년 로마를 무찌른 오스만 제국이 점령해 이슬람의 차지가 됐다.

이대로 이슬람 민족이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는 듯했으나 훗날 영국이 개입하며 판도가 흔들렸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에 소속된 영국은 내분을 이용해 동맹국인 오스만 제국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그 방안으로 영국은 1915년 아랍이 오스만 제국에 대항한다면 그들의 독립을 지지하겠다는 ‘후세인-맥마흔 선언’을 체결한다. 그러나 2년 뒤인 1917년 영국은 유대인들의 여론을 연합국에 우호적으로 돌리기 위해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밸푸어 선언’을 한다. 하나의 땅을 두고 영국이 이중 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7년 국제연합(UN)은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제안했다. 해당 안건이 가결되자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이 정착, 결국 하나의 땅에 두 국가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영토를 공유하게 된 팔레스타인에 연대해 1947년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등 아랍 국가들이 군대를 결성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제1차 중동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은 약 7개월간의 전투 끝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 77%를 차지하며 끝났다. 1967년 6월에는 이스라엘이 아랍을 선제공격하는 ‘6일 전쟁’이 시작됐고 약 3배 가까운 땅을 추가 점령하게 된다. 이후 1973년까지 총 4차례의 중동전쟁 끝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제외한 땅을 전부 점령하게 됐다.
 

이란과 사우디, 미국과 중국

하마스는 왜 하필 지금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일까.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장기 집권하는 한편, 같은 아랍 국가인 모로코, 바레인 등이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으며 하마스는 점차 입지가 좁아졌다. 결정적으로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최근 이스라엘과 수교를 논의하자 하마스로서는 국제사회에서 영원히 잊힐 것이라는 위기감에 이번 전쟁을 일으켰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하마스 뒤에 이란이 있을 수 있다는 ‘이란 배후설’도 주장됐다. 하마스의 공습 이전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한다는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해 72년 만의 대립 관계에서 벗어나 수교 협정을 논의하고 있었다. 해당 수교가 성공하게 된다면 1947년 이슬람 혁명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적대 관계에 있으며 하마스의 지원국인 이란의 중동에서의 입지가 약해진다. 

고려대학교 중동·이슬람센터 성일광 교수는 “최근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모로코, 바레인, 수단 등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도 협상하려는 분위기가 하마스와 이란의 입지를 어렵게 하는 악재로 작용했다”며 “이란은 결사적으로 이를 막아야 했고 그렇기에 하마스를 이용했다고 의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백승훈 연구원은 “이·하 전쟁은 오히려 사우디아라비아에 선택권을 늘려주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의견을 표했다. 미국의 중재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계획하고 있던 것은 맞지만, 이번 전쟁으로 협정 체결의 거절 명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전쟁이란 명분을 얻음으로써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잡을 수 있게 됐다.

이·하 전쟁에서 중국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한 것도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이전까지 중국은 중동문제에 깊게 관여하지 않았으나, 전쟁 초반 이스라엘을 향한 유감을 표하다 이후에는 팔레스타인을 향한 지지 선언을 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러한 행보가 미국을 의식한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중동문제에 깊게 간섭했다. 

이번 이·하 전쟁의 해결과 아브라함 협정 체결에 실패하면 미국의 국제적 위상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입지 역시 위험해진다. 중국이 미국의 이런 정치 상황을 고려해 팔레스타인 지지를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이제는 국제사회가 관심 가져야 할 때

하마스는 1987년 12월 인티파다*가 발생한 직후 반(反) 이스라엘을 주장하며 나타난 무장 정파이면서 동시에 서방 국가들이 지정한 국제 테러 단체다. 이번 하마스 공습이 있던 날 이스라엘 주민 최소 40명이 숨지고 약 800명이 부상당했다. 성일광 교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요구했고 이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인 압바스에 힘을 실어 주게 돼 평화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며 “하마스는 평화적 분쟁 해결 과정에 반대하며 이스라엘의 절멸을 목표로 한다”고 이야기했다.

하마스가 사라지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사라질까. 백승훈 연구원은 “하마스의 테러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옹호해서도 안 된다”면서도 “이번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에 쏠린 국제사회의 관심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재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993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평화적 공존을 모색했으나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통치하기 시작한 2007년부터 이스라엘은 자국민 보호를 빌미로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 및 통제를 시작했다. 

가자지구를 둘러싼 높이 8m의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하고 팔레스타인 주민 이동 제한은 물론 생필품 등의 물자 반입도 차단했다. ‘천장 없는 감옥’으로 불리는 가자지구는 전쟁 직전에도 이미 고사 상태였다. 이번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에 쏠린 국제사회의 관심을 통해 이제는 실질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반면 이번 전쟁으로 하마스가 축출된다고 한들 한 영토 안에서 그 주권을 두고 합의하지 않는 이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끝날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백승훈 연구원은 “이번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도저히 하마스와 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면 다른 단체를 통해서라도 관계를 개선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두 국가 해법**’을 통해 팔레스타인이란 국가를 인정해야 평화를 위한 관계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공중전부터 지상전까지 땅과 하늘을 가리지 않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그 사이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딸이 하마스에 인질로 잡혀가느니 죽는 것이 차라리 축복이라고 통곡하는 이스라엘 국민부터, 난민촌 잔해더미에서 겨우 구출되는 팔레스타인 소녀까지. 지난 3일까지 집계된 이·하 전쟁의 사망자는 1만 598명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고한 민간인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두 국가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제사회의 관심과 목소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티파다: 봉기, 반란을 뜻하는 아랍어. 팔레스타인인들의 반(反) 이스라엘 투쟁을 뜻함
**두 국가 해법: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된 국가로 존재하게 하는 것


전혜원 수습기자 
plohw06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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