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멕시코 다음으로 최하위 임상의사 수를 기록했다. 현재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의과대학(이하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찬반 논쟁부터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는 필수의료와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짚어봤다. 
 

▲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인천광역시의료원 입구. 주변에 주거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인천광역시의료원 입구. 주변에 주거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몰리는 의대 지원생, 부족한 의사 수

의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단과대학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입시철에는 의대 지원생과 재수생, 편입생이 쏟아져 나온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4학년도 수시 전형 10개 의대 평균 경쟁률은 45.59대 1로 지난해의 44.67대 1보다 증가했다. 의대 열풍이라는 말도 생겨났지만 의사 수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OECD의 「2023 보건통계」에 의하면 OECD 국가 평균 인구 1천 명 당 의사 수는 3.7명, 우리나라는 2.5명으로 맨 뒤에서 두 번째 순위다. 

정부는 의료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방안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제안했다. 지난달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2006년 이후 18년째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의대 입학정원을 2025년도 대학입시부터 늘리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진행한 ‘2023 대국민 의료현안 설문조사’에 의하면 56.3%가 현재 의대 정원에서 10% 이상 증원해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다만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지난달 17일 개최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에서 “정부가 의대 증원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할 경우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은 모든 수단을 동원한 강력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지방의료계의 입장은 다르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의료에도 희소성이 적용된다”며 “아픈 사람들과 의료 서비스 요구는 늘어나는데 의사 수는 한정돼 있으니 의사 몸값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단 10년이 넘게 동결돼 있는 의대 정원을 늘려서 의료 서비스 제공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원받지 못하는 필수의료, 공공의료 

의사 수가 부족한 것만이 문제일까. 통계청의 「2021 시도별 의료인력 현황」에 따르면 서울특별시의 전년 대비 의사 증감률은 2.9%로 약 1천 명 늘었지만 광주광역시, 강원특별자치도, 충청도, 경상북도는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지방 의료 공백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수치다. 서울의 경우 인구 1천 명 당 의사가 3.37명이지만, 경상도와 전라남도의 경우는 1명대를 기록했다. 지방에서 진료받기 힘든 특수 과목 진료를 받기 위해 그나마 사정이 나은 서울이나 대도시로 원정을 가는 ‘의료 상경’은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일상이다. 

경상북도에 거주하는 이강옥(87) 씨는 “늙을수록 아픈 곳이 점점 많아지는데 이 근방에는 제대로 치료할 만한 곳이 없어 옆 도시로 나가야 한다”며 “병보다 병원에 가기 위한 과정이 더 고통스러운 지경”이라는 현실을 전했다. 조승연 원장은 “시골에 사람이 떠나는 것도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 때문인데 의료 부족 문제도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했다.

지방의 의료 여건 및 시설 부족은 꾸준히 언급돼 온 문제다. 하지만 대도시에도 의사가 부족하다. ‘응급실 뺑뺑이’라고 불리며 진료를 받지 못해 구급차에서 사망하거나 병상에 오르지도 못한 채 목숨을 잃는 사례가 연달아 논란이 됐다. 지난 3월 대구광역시의 한 건물에서 추락한 10대가 치료 가능한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구급차 안에서 사망했다. 

병원은 ‘치료 가능한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환자를 받지 않았다. 지난해 국회보건복지위원회의 「지난 10년간 과목별 인구 천 명당 전문의 증가율 현황」에 따르면 필수의료 과목의 인력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2012년에 비해 지난해 전문의 증가 비율에서 비필수의료 과목인 성형외과는 58%가 늘었지만 필수의료 과목인 산부인과는 12.2% 증가에 그쳤고 외과는 20.9%, 흉부외과는 18.6% 증가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사망해 의사 부족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신경외과의 경우 32% 증가했지만 이는 여전히 인구 1천 명당 1명이 되지 않는 수치다. 우리대학 도시보건대학원 남백주 교수는 “의사가 배출돼도 필수의료 과목으로 진출하기보다 수입이 더 높은 분야인 피부, 미용 관련 과목 쪽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면받는 필수의료 과목

급선무는 분야에 따라 나뉘는 의사들의 과목 수요다. 의료계 종사자들은 가장 먼저 워라밸과 소득 차이를 비롯한 근무 환경의 차이를 꼽는다. 아주대학교 의학과 재학생 A(21) 씨는 “기본적 인프라와 의사로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서울에 있기에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며 “과 선택에 있어 워라밸과 소득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요소며 페이닥터만 해도 교수의 몇 배를 벌고 대학병원 등은 업무 강도가 살인적이기에 대부분이 개업을 원한다”고 설명했다. 조승연 원장은 “공공병원 등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다른 곳에 비해 처우와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공병원과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가 고루 지원하게 하려면 병원의 인프라, 의사 급여 개선과 더불어 보험 문제도 함께 해결돼야 한다. 성형외과는 비보험 진료에 해당돼 의사의 순수익이 높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이 필수의료 과목은 수가를 낮게 책정해 원가 보존율이 매우 낮아지는 것이 문제다.

A씨는 “소아과 폐과를 시작으로 필수의료 과목의 붕괴가 우려된다”며 “보험적인 측면에서부터 진료 과목에 따라 금전적 지원이 다른데 병원 입장에서도 필수의료과에 대한 지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남백주 교수는 “필수의료, 공공의료 특성상 적자는 불가피하기에 국가가 반드시 손실을 메꿔주고 공공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의 공공성은 어디에

국민의힘은 지난 6일 ‘지역 필수의료 혁신 테스크포스(이하 TF)’ 1차 회의를 개최해 “대한민국의 의료 서비스가 한계에 도달했다”며 “필수의료 인력을 확충하고 거점 의료기관인 지역 병원과 의원의 상생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할 것”이라며 지역 어디서든 동등한 수준의 의료가 보장돼야 함을 주장했다.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의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의료를 지탱하는 공공병원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설립 주체에 따라 병원은 분류가 나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공공병원은 이익과 손해 전부 설립 주체인 정부의 책임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공의료에 무관심했음을 지적한다. 조승연 원장은 “일제시대 때 만들어졌던 공공병원 수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지만 민간병원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며 “1970년대만 하더라도 민간병원과 공공병원의 수가 거의 차이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95대 5의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역 거점의 공공병원을 설립한대도 시골이나 인구가 없는 곳에 위치하거나 제대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는 곳이 많다. 실제로 지난 2013년 경상남도 서부의 공공의료를 책임지던 진주의료원은 경남도청 서부청사 설치를 이유로 폐원됐다. 인천의 중심에 위치하던 인천광역시의료원은 1997년에 갯벌이었던 현 위치로 내쫓겼다. 코로나19도 공공병원의 사정이 악화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남백주 교수는 “코로나19 당시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방 거점 공공병원들이 확진자를 돌보는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며 환자를 받을 수 없게 됐고, 인력도 많이 감소됐다”고 분석했다. 병상이 비교적 적은 공공병원이 전담병원이 되며 모든 기능을 코로나19 극복에만 소모했다는 이야기다. 남 교수는 “민간 병원과 똑같은 수준의 손실 보상이 주어지며 공공병원의 회복이 더디고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정부나 지자체는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공공병원을 설립한다. 군인을 맡는 군인 병원, 산업 재해를 입은 이들을 위한 산재 병원 등이 그 사례다. 공공병원은 사회적 기능을 도맡지만 민간병원에 비해 규모가 작은 것도 문제다. 남 교수는 “특히 계층 간 격차가 극심한 서울은 병상 비중만 놓고 따지면 전국 평균보다 낮다”며 “감염병, 정신질환, 빈곤으로 인한 질병에 더 많이 노출돼있지만 서울의 12개 시립병원 중 서울의료원을 제하고는 규모가 작아 지역 공공의료 실현이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인구가 많고 밀집된 서울의 경우에도 공공의료 인프라가 많이 부족한 실정임을 지적한 것이다. 

조 원장은 “결국 응급실 뺑뺑이 사례 등은 단순히 의사 부족 문제가 아니라 공공적으로 운영하는 병원이 많이 없기 때문”이라며 “공공의료를 강화한다는 얘기는 민간병원이든 공공병원이든 환자를 돌보는 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 등을 통해 공공의료, 지역의료, 필수의료 인력에 종사할 이들을 전문적으로 길러내는 제도의 필요성도 대두됐다.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거론돼야 할 사안이지만 아직 본격적인 논의는 시작되고 있지 않다. 화려한 비필수의료 과목과 민간병원의 간판에 가려진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의료’에 관심을 쏟아야 할 시점이다.


*지역의사제: 지역 의대를 졸업한 의료인이 대학 소재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공공·필수 의료 분야에 10년간 종사하도록 하는 제도


신연경 기자 
yeonk486@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