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경 편집국장
신연경 편집국장

인간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회화가 필요하다. 자연스레 사회화 기관을 거치고, 기관 내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자라고 늙어간다. 1차 사회화 기관인 가족 내에서는 부모님과 형제가 세상의 전부다. 우리는 그들을 보고 따라하고 생존의 필수 요건을 배운다. 조금 더 자라면 또래 친구를 만나 우정을 나누고 또래 문화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그놈의 유행이 뭔지,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오는 요상한 패션들도 친구가 하면 나도 꼭 해야 한다며 울부짖던 시절이었다. 2차 사회화 기관으로 나아가면 혈연, 또래가 아닌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다니며 사회적으로 생존하는 법을 배우는 어엿한 어른이 된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가 세상의 전부고, 첫사랑을 시작하면 좋아하던 사람이 세상의 전부가 된다. 좋아하면 닮는다는 말이 있듯 우리는 서로를 흉내 내고 집단 내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를 사용하며 결속력과 애정을 표현한다. 상대가 다치면 내가 다친 것처럼 슬퍼하기도 한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김대수 뇌과학자는 인간은 결코 사랑할 수 없는 동물임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열렬히 사랑하고 울고 웃을까. 그의 연구에 따르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뇌에서 ‘자기’의 개념을 확장하고 있었다. 우리는 좋아하는 이들을 나와 동일하게 여기고, 챙기고, 공감한다. 그런 세밀한 보살핌은 결국 가족애, 우정, 또는 성애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끝이 없을 것처럼 사랑하고 영원을 약속하지만 결국 종말은 입을 벌리고 우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단순히 더 이상 끌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부터 물리적인 이별과 죽음까지 여러 이유로 사람들은 다른 길을 걷기 위해 멀어진다. 오래 함께하자던 인연은 금방 떠나고 오래 함께하던 가족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취를 감춘다. 언제까지나 큰 물줄기로 함께할 것 같던 물줄기도 결국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구간을 마주한다. 환경과 시간의 변화가 우리를 ‘우리’로 함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상실은 인간이 죽을 때까지 지속될, 어쩌면 죽는 순간에도 겪게 될 가장 큰 고통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사랑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유대를 나눈다. 

영원이란 말을 좋아한다. ‘영원이란 말은 없대도 우리 영원하자’라는 말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남기는 편지의 마무리다. 벌써 학기는 끝나가고 거리에는 눈과 함께 연말 분위기가 흩날린다. 아쉽지만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은 분명 치열했으니 그 시간을 바탕으로 또 다른 열정과 사랑을 찾아 나가야 할 때가 다가왔다. 함께하던 이들이 새로운 곳에서 멋진 삶을 개척해 나가기를. 각자의 또 다른 사랑을 찾고, 몰두하고 무사히 헤어지기를. 그리고 언젠가 운명이 허락하는 한 무사히 만나 잘 지냈냐는 악수를 나눌 수 있길 바란다.


신연경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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