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족’이라고 불리는 무직자가 늘고 있다. ‘프리터족’과 다르게 아르바이트조차 하지 않는 이들을 일컫는 니트족은 뜨거운 감자다. 이들은 교육에도, 취업에도, 가정을 꾸리는 데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통계청의 「10월 비경제활동인구」에 따르면 3년간 취업하지 않은 만 15세부터 29세의 청년은 약 22만 명이다. 취업하지 않은 채 ‘그냥’ 쉰 사람은 약 8만 명으로 40%에 달하는 수치다. 그러나 정말 그들은 그냥 쉬고 있을까. 이유 없는 쉼은 없다. 한창 인생을 꾸려나갈 청년들은 어째서 구직을 단념하고 방구석에 들어앉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일을 한다고 해서 더 나은 환경으로 도약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서민들은 외곽으로 몰려나고 아파트와 부지는 부자들의 투기 용도로 전락했다. 이미 대기업들은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한국전력은 2009년 이후 14년 만에 2천 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받는다. 이번해 국내 기업부채는 세계 3위, 부채 증가 속도는 2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물가 안정을 위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해야 함을 권고했다.

자본의 가치와 지배력은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겪으며 더욱 공고해졌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인문학은 경시받는다. 사람들은 개인의 적성보다 고액의 연봉과 안정성을 추구하며 일률적인 ‘성공’을 바란다.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도전을 이어 나가지만 그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패배자로 여겨지거나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한 채 ‘n수의 늪’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취업을 한대도 집을 살 수 있을 만큼의 유의미한 자본을 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오직 벼락같은 운이나 신분 상승만을 노려야 하는 시대다. 열심히 살아도 성공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멈춰버리면 손가락질을 받는다. 과연 이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 얼어붙은 청년들을 녹이고 이 사회의 기반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하려면 살기 좋은 국가가 선행돼야 한다. 기업부채와 국가부채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황에 구직 단념자를 탓하는 건 이 상황을 타개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가 니트족들에게 손가락질할 것인가. 그들이 바로 니트족을 탄생시킨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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