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몰랐day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념일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11월 11일, 많은 사람이 빼빼로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과자만 먹으며 보내기에는 무거운 의미가 담긴 날이기도 하다. 11월 11일은 ‘국제연합(UN) 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UN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기념하는 추모일이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UN 참전국 모두 국경을 초월해 같은 마음으로 하나 돼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기리는 국제적인 화합의 장이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단일 연합국으로 참여한 전쟁이다. 한국전쟁 중 가장 유명한 전투는 1950년 9월 15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UN군과 대한민국 국군이 펼친 ‘Operation Chromite’, 인천상륙작전이다.  전쟁 초반 북한군은 국군을 낙동강 전선까지 압도했다. 하지만 길어진 보급로와 지속된 격전으로 북한군의 전투력은 바닥나기 시작했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에 상륙해 한반도의 중추를 정면 돌파함으로써 북한군의 보급책을 파괴해 적의 후방을 단절시킬 계획을 세웠다. 

▲ 한국전쟁 70주년과 11월 11일 UN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을 맞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공개된 UN참전용사 추모 영상
▲ 한국전쟁 70주년과 11월 11일 UN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을 맞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공개된 UN참전용사 추모 영상(출처: 국가보훈처 페이스북)

그러나 인천은 상륙하기 힘든 특징을 모두 갖고 있었다. 극심한 조수간만의 차, 높은 해벽, 좁은 단일 수로가 존재해 작전의 성공 확률은 5천분의 1이었다. 대한민국 해군 첩보부대의 ‘X-RAY’ 작전과 낙동강 전선, 삼척, 군산에서 양동 작전을 병행한 결과 1950년 9월 15일 새벽 맥아더 장군의 군대는 극적으로 인천 상륙에 성공한다. 역전의 신호탄이 울리며 국군은 서울 수복에 성공해 이북으로 진군하게 된다.

허나 치열했던 전투의 이면에는 아픈 상처가 존재한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국군 62만 명, UN군 16만 명이 희생됐고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실종되거나 사망했다. 정부는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 UN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20년  『UN 참전용사의 명예선양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11월 11일을 법정기념일로 격상하고 매해 UN 참전용사 국제 추모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추모행사는 2007년 캐나다군 소속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자 종군기자인 빈센트 커트니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됐다. 2008년부터는 국가보훈처의 주관으로 ‘부산을 향해 묵념한다’는 의미의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국제 추모 정부 기념식이 진행됐다. 

11월 11일 11시 정각에 UN 참전용사가 안장된 부산 UN 기념공원을 향해 1분간 추모한다. 기자도 해당 시각에 참전용사들을 추모하며 묵념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으니 시끄러운 전쟁통 속에 있는 병사가 된 것 같았다.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며 눈을 뜨니 그 자리엔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고요와 평화만이 남아있었다. 11월 11일을 맞이해 빼빼로를 챙기는 것도 좋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및 UN군의 희생과 노고를 유념하며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이건 수습기자 
gunlee20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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