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용(도행 23)

몇 년 전부터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기존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엑스(X)가 정제되지 않은 단편적이고 대량의 정보를 쉴 새 없이 쏟아내는 SNS라면 블로그는 조금 더 정제된 문장과 언어를 사용하고 정보의 빠른 전달보다는 기록에 중점을 둔 형태의, 말하자면 ‘슬로우 SNS’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올라오는 인스타그램의 자극적인 스토리와 피드의 현란한 게시물에 정신적으로 지친 사람들은 이제 어린 시절에 쓰던 일기처럼 블로그에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를 느리지만 정성스럽게 기록한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다. “나의 삶을 기록함으로써 과거의 나에게서 반성과 교훈을 얻고자...” 식의 거창한 동기를 말하고 싶지만 조금 부끄럽게도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유행에 편승하기 위해서였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친구들이 올린 블로그 링크를 누르면 보이는 정성스럽고 멋들어지게 기록한 일상을 보며 막연하게 휴대전화의 갤러리를 뒤져가며 첫 블로그 글을 썼다. 그러나 매일 학교, 독서실, 집 세 곳이 일상의 전부였던 충청도 시골 고등학생의 삶은 너무나 비슷하고 단조로웠고 나에게 기대한 만큼의 흥미를 주지 못했다. 그렇게 내 첫 블로그 시도는 세 편의 글을 남긴 채 마무리됐다.

그리고 2년 후 나는 대학에 입학하게 됐고 지난 19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게 됐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특별한 날들이었고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그렇게 정신없는 학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문득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는 빠르게 흐르고 기억은 한계가 있어 언젠가는 잊힐 텐데 너무 빨리 지나가는 소중한 지금을 잊지 않고 싶다.” 그때 기억 한켠에 있던 블로그가 떠올랐고 나는 블로그 앱을 다시 설치해 2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나의 글 세 편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학교와 독서실과 집을 왕복하는 일상, 성적에 대한 고민, 대학과 진로에 대한 고민, 그 속에 조금씩 녹아있는 친구들과의 추억들. 작문 형식을 지켜 쓰지도 않았고 거창한 인용구를 가져오지도 않았지만 그때의 내 상황과 감정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 세 편의 글을 몇 번이나 되뇌며 다시 블로그에 내 일상과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내 블로그는 지금까지도 매일 한 편의 글로 스무 살을 담는 중이다.

바야흐로 ‘글 수난 시대’다. 사진과 영상 같은 매체가 주가 되고 글은 이를 보조하는 수단이 돼버린 듯한 요즘. 우리는 짧고 단순하고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서 블로그는 우리에게 느림의 미학과 글의 소중함을 동시에 전달하는 소중한 존재다. 비록 서투르고 느리지만 차분한 글로 현재의 나를 기록할 수 있고 먼 훗날 과거의 나를 기억하도록 해주는 블로그는 우리에게 추억첩이자 쉼터가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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