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을 대표하는 보드게임은 단연 ‘바둑’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체스와 대응되는 장기와 달리 바둑은 동양만의 독자적인 전략 게임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명맥을 이어온 바둑은 우리대학 학우들도 활발하게 즐기고 있다. 

지난달 4일부터 5일까지 개최된 ‘제10회 신안천일염 전국대학생 바둑대회’에서 우리대학 최동휘(경제 19) 씨가 중급부 준우승을 차지했다. 최 씨는 “전국에서 열리는 가장 큰 대학생 바둑대회 중 하나라 입상을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았다”며 “우승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유소년 바둑대회 경험들 덕분에 대학생 바둑대회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판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 우리대학 중앙 바둑 동아리 시립GO의 학우들이 바둑두기에 열중하고 있다.
▲ 우리대학 중앙 바둑 동아리 시립GO의 학우들이 바둑두기에 열중하고 있다.

2500년 동안 사람들을 매료시킨 바둑

바둑의 시초에 대해서는 기원전 약 2300년 요순시대부터 시작됐다는 추측을 비롯해 많은 가설이 있다. 실제 발견된 기록들을 바탕으로 추정해도 바둑은 약 2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다. 춘추시대 학자 공자의 말을 엮은 『논어』에도 바둑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고려 후기 집필된 『삼국유사』에 고구려 승려와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신라고분 44호에서 바둑돌이 발견된 것을 미뤄봤을 때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바둑을 즐겼음을 추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바둑이 꽃피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바둑 올림픽 ‘잉창치배’에서 조훈현 바둑 기사가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다. 국제적인 바둑대회 우승 사례가 없던 우리나라는 한순간에 세계 바둑의 중심이 된다. 당시 바둑계를 잡고 있던 나라가 중국과 일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우승은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후 이창호, 이세돌 등 수많은 천재 바둑 기사들이 등장하자 바둑계는 어느덧 한·중·일 삼국 체제에서 우리나라의 독주로 변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둑의 인기가 시드는 데에는 우리나라의 바둑 제패가 일조했다.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남치형 교수는 “스포츠의 쾌감을 선사할 마땅한 라이벌 국가가 사라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바둑의 인기가 꺾였다”고 설명했다. 컴퓨터 게임의 등장과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 역시 바둑의 인기를 식게 했다. 

대한바둑협회에서 발간한 「2016 대한민국 바둑백서」에 따르면 2000년에 1년간 대국 경험자 수는 바둑 대국 방법 인지자 기준 76.4%였으나 2008년 60.5%, 2016년에는 41%로 급락했다. 남 교수는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은 바둑과 더불어 볼링, 당구 등 전반적인 고전 스포츠의 인기 감소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 백돌이 중앙 교차점의 활로를 전부 차단해 만든 집. 중앙 교차점은 흑돌의 착수금지점이 된다.
▲ 백돌이 중앙 교차점의 활로를 전부 차단해 만든 집. 중앙 교차점은 흑돌의 착수금지점이 된다.

집이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싸움

바둑은 보드게임 중 가장 간단한 규칙을 가진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각의 기물에 정해진 명칭도, 움직임의 제약도 없으며 흰 돌과 검은 돌을 바둑판 위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바둑에서 지켜야 하는 기본 규칙은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두 경기자가 한 수씩 번갈아 가며 돌을 놓는다. 

이때 돌은 착수금지점을 제외한 격자의 교차점 위에 자유롭게 올릴 수 있다. 한 번 올린 돌은 절대로 무를 수 없으며 경기가 종료된 후 더 많은 ‘집’을 지은 사람이 승리한다. “바둑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집이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에요.” 이번해 G마켓의 바둑 제품 판매량을 전년 대비 134% 증가시키는 등 바둑 열풍을 불러온 드라마 <더 글로리>의 대사는 바둑의 규칙을 관통한다.

한 바둑돌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인접한 교차점들 중 중심 바둑돌과 같은 색의 돌을 둘 수 있는 점을 ‘활로’라고 한다. 한 색깔의 돌이 활로를 전부 차단하는 울타리를 만들게 되면 울타리 내부 점들은 집이 되며 이 집의 내부는 돌을 둘 수 없는 착수금지점이 된다. 만약 본인이 둔 돌이 상대의 집에 갇혀버린다면 갇힌 돌은 ‘포로’가 되며 상대방이 집 내부의 돌을 전부 가져간다. 상대의 돌이 본인의 돌을 둘러싸기 시작해 오직 하나의 활로만을 남겨둔 상황을 ‘단수’라고 부르며, 단수에 몰린 돌을 살리지 않으면 그 돌은 잡아먹힌다.

움직임에 자율성이 높은 만큼 바둑에서 돌은 상대의 수를 읽으며 능률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자신의 수가 상대의 수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단편적이고 둔탁한 움직임보다 전체적인 맥을 읽는 유연한 움직임을 추구한다. 그러나 능률만을 추구하다 돌의 이어짐이 단절돼서는 안 된다. 튼튼한 울타리가 집을 보호할 수 있듯 돌의 이음을 고려하며 끊김 없이 맥을 이어야 한다.

미생에서 완생으로

남치형 교수는 “매번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고, 그것을 파악하고 고민하며 종국에는 복기를 통해 패착을 재고해 볼 수 있다는 것”을 바둑의 특화점으로 꼽는다. 정해진 답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힘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바둑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판이 끝난 뒤 상대방과 함께 왜 그 수를 뒀는지 의논하며 상대의 전략을 듣고 본인의 실수를 깨달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 우리대학 중앙 바둑 동아리 시립GO의 강남기 회장은 “바둑의 예절을 통해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는 법을 알게 된다”며 “오랜 시간 바둑을 두며 인내를 배우고, 수를 읽으며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를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바둑판은 가로와 세로 19줄, 총 361곳의 교차점이 있으며 바둑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한에 가깝다. 무한한 대국의 형세처럼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 역시 제각기 다른 모습이다. 강 회장은 “작은 바둑돌로부터 삶의 이치를 배우는 그때, 우리는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이 곧 바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바둑 용어 미생(未生)은 집을 만들지 못해 완전히 살아있지 못하고 언제든 상대에게 공격받을 여지가 있는 상태를 뜻한다. 반대로 완생(完生)은 돌이 완전히 살아있어 상대가 공격할 수 없는 상태다. 미생의 의의는 죽어버린 사석(死石)과 달리 완생의 가능성을 품고 있음에 있다. 삶의 어떠한 굴곡과 역경에도 실패를 복기하고 한 수 앞을 바라보며 착수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언젠가 미생에서 완생으로 향할 것이다.


전혜원 기자 
plohw06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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