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check - 『커리어 그리고 가정』

이번해 노벨 경제학상은 하버드 경제학과 최초의 여성 종신 교수인 클라우디아 골딘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노벨 경제학상 발표에서 “여성의 노동시장 결과에 관한 이해를 진전시켰다”고 평했다. 골딘 교수는 저서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서 지난 세기 동안 여성들이 커리어와 가정을 모두 성취하려 노력해 온 발자취를 좇아간다. -편집자주- 

문제는 시간, 선택, 시스템

지난해 우리나라 성별 임금격차는 31.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22.1%(일본), 16.9%(미국), 17%(OECD 평균)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성별 임금격차는 공통적인 문제다. △종사하는 직종의 차이 △업무 강도의 차이 △성차별적인 인식 등이 문제의 원인으로 제시돼 왔다. 그러나 골딘 교수는 이러한 요인을 조절해도 성별 임금격차는 크게 개선되지 않으리라 단언한다. 그는 거의 모든 직종 내에서 남녀 간 임금격차가 있으며, 핵심은 시간을 배분하는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골딘 교수는 연구 대상을 대학교를 졸업한(이하 대졸) 미국 백인 여성들로 한정했다. 이들은 대학교 졸업 직후 중대한 결과가 달린 시간 배분의 선택에 직면한다. 결혼을 일찍 할지, 늦게 할지. 대학원에 진학할지, 곧바로 취업할지. 지금 아이를 가질지, 커리어 기회를 잡을지. 그들은 커리어와 가정에서 모두 성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골딘 교수의 전제다. 이를 위해서는 커리어와 가정에 시간을 배분하는 어려운 선택을 내려야 한다.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커리어와 가정에 있어 중요한 시간대가 겹치기 때문이다. 커리어를 쌓는 데 중요한 20대와 30대는 아이를 출산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시기다. 해당 시기에 커리어에 집중한다면 커리어가 안정된 30대 후반부터는 아이를 출산하기에 신체적으로 위험한 시기로 접어든다. 

반면 출산과 양육에 시간을 배분하면, 아이가 충분히 자라 상시 대기가 요구되지 않을 때까지는 커리어에 집중하기 어렵다. 아이가 자란 뒤 커리어를 쌓으려면 30대 후반에 학업이나 초기 커리어에 뛰어드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노동 시스템이 요구하는 조건도 여성이 커리어와 가정에서 성공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골딘 교수는 ‘탐욕스러운(greedy) 일’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는 “커리어 성공에는 가차 없는 밀도로, 장시간 일하며, 불규칙한 일정에 대응할 것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전문직과 경영자, 교수, 의사가 그 예시다. 또한 아이가 생긴 가정에서는 부부가 개인보다 가구 소득을 늘리고자 하면서 여성이 커리어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부부가 유연하게 커리어와 가사를 분배한다면 둘 다 탐욕스러운 일에서 배제돼 가구 소득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선택이다. 결국 부부는 가구 소득을 늘리기 위해 부부간 커리어와 가정의 공평성을 버리는 선택을 하고, 이것이 성별 임금격차의 원리로 작용한다. 
 

■ 지난 한 세기간의 미국 대졸 여성: 세대별 다섯 개 집단
■ 지난 한 세기간의 미국 대졸 여성: 세대별 다섯 개 집단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와 공존한다”

책에서 말하는 커리어와 가정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와 다소 다르다. 골딘 교수는 커리어와 일자리를 다르게 바라본다. 당사자가 열망하는 동시에 자아 정체성에 중요한 경우는 커리어로 지칭한다. 일자리는 당사자의 정체성이나 목표가 아닌 소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한다. 또한 책에서 말하는 가정은 아이를 낳는 것을 필요조건으로 두기에 부부로만 이뤄진 경우는 제외된다.

골딘 교수는 출생 연도와 대학 졸업 연도를 기준으로 집단을 5개로 나눴다. 

1900~1920년에 대학을 졸업한 집단1부터 시작해, 1980~2000년에 대학을 졸업한 집단5까지를 관찰했다. 집단별로 커리어와 가정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게 나타났다. 골딘 교수는 그 이유를 여성의 자발적 선택과 사회 제도적 변화로 바라보며, 집단별로 이전 세대가 남긴 교훈이 다음 세대의 선택에 영향을 줬다고 강조했다. 집단4는 커리어를 먼저 택한 다음 가정을 이뤘는데, 이들은 가정을 먼저 이뤄 일자리에 늦게 진입한 어머니 세대를 닮지 않으려 했다고 묘사된다. 추가로 집단4가 20대인 시기에 피임약 사용 규제를 완화한 제도적 변화가 있었음을 사회 제도적 원인으로 지목했다.

한국 여성들의 선택은

골딘 교수의 연구는 성별 임금격차의 원인으로 노동구조와 시간 배분을 제시해 의미가 있다고 평가된다. OECD 최대치의 성별 임금격차를 보이는 동시에 출산율이 급락하는 한국에 대해서는 어떨까. 골딘 교수는 지난 10월 기자회견에서 “기성세대, 그중에서도 아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을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성세대와 다음 세대 남성들의 역할을 중시한 설명이다. 

다만 한국 여성들은 골딘 교수의 연구 속 여성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골딘 교수는 미국 대졸 여성이 커리어와 가정 모두 성취하려 한다고 봤지만, 일부 한국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보다 커리어를 선택하는 등 양립보다 양자택일을 선택하기도 한다. 

지난 3월 시사IN의 조사에 따르면 자녀를 반드시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혼 응답자는 △10.2%(20대 여성) △26.1%(30대 여성)로, △35.5%(20대 남성) △37.7%(30대 남성)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낮게 집계됐다. 골딘 교수는 책에서 “각 세대는 나름의 형태로 성공을 달성했고 다음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줬다”며 “각 세대의 여성들이 내린 의사결정은 주어진 제약들과 미래의 전망을 가늠할 수 있는 당대 여성들의 역량 아래에서 적합하고 타당하게 내려진 결정이었다”고 전한다. 이제 집단5 이후의 여성들이 선택할 차례다.


정시연 객원기자 
jsy434438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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