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경 편집국장
신연경 편집국장

겨울 동안 해외취재를 다녀왔다. 장소는 일본의 최남단에 위치한 여름의 도시, 오키나와다. 해외취재를 간다고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좋겠다”. 오키나와에 간다고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놀러 가네?”였다. 분명 오키나와는 휴양지의 느낌이 강하다. 푸른 물결을 자랑하는 바다와 온난한 기후는 오키나와를 ‘동양의 하와이’로 만들었으며, 길거리에 활짝 핀 히비스커스 꽃잎은 왠지 모르게 가슴을 떨리게 한다. 햇빛을 받으며 찰랑거리는 바다와 공존하는 높은 시멘트 건물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위로 손을 뻗는다. 네온사인이 켜진 국제거리의 한복판에서 초록색으로 잔뜩 물든 수풀과 야자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곳은 자연 속인지 도시인지 모를 정도로 기묘하고 아름답다. 

우리 취재단은 취재기간 내내 한 곳의 숙소에 머물렀다. 4일 동안 같은 동네를 거닐다 보면 뭔가 ‘이상’한 것들이 느껴진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인들과 조금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인사말과 감사, 엄마를 부르는 언어조차도 일본어와는 조금 다르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속한 하나의 현임에도 이국적인 느낌을 선사하는 이유는 이 섬이 지내 온 시간에 있다. 에도 막부 시기 사쓰마 번의 침략을 겪기 전까지 오키나와는 14세기부터 독자적인 역사를 이어 온 ‘류큐 왕국’이었다. 일본의 지배 체제와 미군정을 지내며 오랜 수탈과 문화 파괴를 겪으며 류큐의 유구한 전통과 언어는 시골의 문화나 사투리로 전락했다.

부산의 국제시장처럼, 오키나와의 국제거리에서는 영어 간판이나 스팸을 이용한 요리, 스테이크 등의 미국 문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영향으로 화려하고 놀 거리가 많아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음울한 현실이 숨겨져 있다. 유입된 미국의 식습관으로 인해 청년들의 비만율은 오르고 기대수명이 짧아졌다. 일본 본토의 두배에 달하는 빈곤율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게 만들었다. 국제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조용한 마을들이, 도심을 벗어나면 미군기지와 시골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나하시를 벗어난 뒤로 아름다운 휴양 도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통을 덮친 외국 문화와 불경기로 인한 실버세대 증가라는 불청객에도 오키나와는 웃으며 피서객들을 맞이한다. 불청객을 쫓아내기보다, 그들을 관광업으로 이용하고 노인들의 속도에 맞춰 교통을 통제한다. 사람들은 노인 운전자 차량임을 표시하는 클로버 스티커를 보면 당연하다는 듯 부드럽게 속도를 낮춘다. 오키나와의 아름다움은 비단 그 자연과 도시에만 있지 않는 것이다. 삭막한 현실에 지치는 순간이 온다면, 따뜻한 마음과 정신으로 류큐의 정신을 지키고 있는 오키나와에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맨소래”라는 오키나와 전통 인사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신연경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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