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은 작품 속 찰나를 전달합니다. 책, 영화, 드라마 등 활자와 영상이 담아낸 장소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는 아내가 벌어오는 돈에 의존한 채 연명하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는 어느날 감기에 걸린 자신에게 아내가 먹이던 해열제 아스피린이 수면제 아달린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충격에 빠진 그는 곧장 집을 나와 산과 경성역을 헤매다, 한 백화점 옥상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주인공은 백화점 옥상에서 현실을 부정하다 마침내 한 가지 질문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 할 곳을 알지 못한 채 고뇌하던 주인공이 서 있던 미쓰꼬시 백화점은 현재 ‘신세계백화점(이하 신세계)’이라는 이름으로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미쓰꼬시 백화점의 외관을 유지하고 있는 신세계 본관은 어딘가 칙칙한 무광의 회갈색입니다. 『날개』를 떠올리며 낮은 채도의 외벽을 바라보면 옥상에서 주인공이 느낀 혼란과 막막함에 더욱 이입하게 됩니다. 인간 사회를 “스스러워”하던 스물여섯 청년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볕조차 들지 않는 작은 방에서 아달린을 먹거나, 여느 사람들과 같이 “회탁의 거리”속으로 섞여 가는 것이죠.

고민하던 주인공은 불현듯 자신의 겨드랑이에서 가려움을 느낍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돈에 대한 욕심도, 세상에 대한 욕심도 없이 권태로움을 느끼던 주인공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갈망합니다. 날개를 통해 비상을 꿈꾸는 주인공의 독백을 마지막으로 소설은 끝납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지금과 달리 과거에 미쓰꼬시 백화점에서 주인공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은 회탁의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과 푸른 하늘뿐이었을 겁니다. 한적한 신세계 옥상에 서 있자니, 모두가 유흥과 여가를 위해 방문한 장소에서 홀로 괴로워하고 있었을 주인공의 심정에 동화되는 기분이 듭니다. 『날개』의 결말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을 때는 신세계를 방문해 주인공의 선택을 예상해 봐도 좋겠습니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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