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이 뭐가 매워요?” 매운맛 열풍의 시작이자 이제는 ‘K-매운맛’의 척도가 된 신라면부터 2012년 불닭볶음면, 지난 2020년 마라탕까지. 식품업계는 여전히 매운맛 삼매경이다. 

대학생 전바다(22) 씨는 “옛날에는 신라면을 엄청 맵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지금은 신라면보다 더 매운 음식이 많아 신라면은 전혀 맵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운 음식은 언제부터, 어떻게 한국인의 밥상에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을까.

태생부터 매운맛의 민족?

한식의 매운맛을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추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고추가 발견된 15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는 수입품인 후추를 대신해 고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추는 아프리카를 거쳐 인도에서도 여러 요리에 향신료로 이용됐으며, 양쯔강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는 “중국을 통해 16세기 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고추를 처음부터 사람들이 즐겨 먹은 것은 아니다”라며 “고추 이전에는 마늘과 천초를 이용한 요리를 즐겼지만, 한반도 남부 지역까지 퍼지며 고추의 인기가 늘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조선인이 고추의 매운맛을 즐겼던 것은 아니다. 당시 일부 지역의 부잣집에서는 고춧가루를 많이 쓰면 음식이 상스럽다고 여겨 사용을 꺼렸다. 또한 과거 북한 지역은 고추가 자라기 어려운 척박하고 추운 환경이었기 때문에 고추를 이용한 음식이 많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며 고추의 매운맛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1970년대에는 고추의 품종 개량으로 급증한 생산량이 사용량 증가로 이어졌다.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에 의하면 연대별 배추 1포기당 평균 고추 사용량은 1960년대 20.25g에서 1980년대 53.37g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주 교수는 “전쟁 이후 스트레스가 매운맛을 찾게 했다”며 “고추의 중독성은 상업성을 띠었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중후반 서울의 무교동 회사 근처의 매운 음식은 노동자의 애환을 달래는 친구였다. 

1990년대 미국의 식품회사에서 만든 핫소스로 또 다른 매운맛 유행이 시작됐다. 핫소스는 고추에서 나온 캡사이신 액을 추출해 만든 소스다. 미국에서의 핫소스 유행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 식품 산업에서도 성행했다. 핫소스를 넣어 만드는 치킨이 바로 불닭볶음면의 모티브가 됐다. 이전까지 인기를 끌었던 설탕이 첨가된 달콤한 매운맛과 달리 캡사이신을 위주로 통증을 유발하는 매운맛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스트레스, 매운맛으로 풀어야지

엽기떡볶이, 마라탕, 불닭볶음면은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대표적인 매운 음식이다. 지난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라면·면류 연령별 인기 검색어 통계」에 의하면 불닭볶음면, 송주불냉면 등이 10대부터 30대까지의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주영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마라탕은 중국의 조선족이 한국에 처음 소개한 것”이라며 “이미 고추와 핫소스의 매운맛을 정복한 우리의 입맛을 마라가 사로잡았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2020년 1월 관세청에서 발표한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수입된 소스류는 약 7만 5천t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매운맛 수요가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이 매운맛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른바 ‘맵부심’을 자극하는 것이 현재 식품업계 트렌드다.

지난달 19일 기자는 매운 만두로 최근 유명세를 탄 ‘입이즐거운그만두’ 가게에 방문했다. 가게를 가득 채운 손님 대부분은 맵기로 유명한 만두를 주문해 먹고 있었다. 가게 대표 도현수 씨는 “매운맛의 유행이 지속되며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며 “매운 만두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가 많아 가게가 늘 분주하다”라고 설명했다. 가게에서 매운 만두를 먹고 있던 이윤호(18) 씨는 “매운 만두에 중독돼 가게를 자주 찾는다”며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도 매운맛 음식을 도전하는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SNS에 나오는 먹방과 같은 콘텐츠가 매운맛 열풍을 지속시키는 주요 원인”이라며 “현재 식품업계에서 재밌는 챌린지를 도전할 수 있는 매운맛 식품의 공급이 이어지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몸이 힘들 때 매운 음식을 먹으면 풀리는 느낌 때문에 사람들은 매운맛을 끊을 수 없다”며 “연령과 세대를 막론한 매운맛 열풍은 우리 사회의 스트레스 척도를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0년 CJ대한통운이 발표한 「2~9월 떡볶이, 불닭발과 같은 매운 식품 물량」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한 8월 한 달간 매운 식품 택배 물량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40.6% 늘었다. 

실제로 매운 음식을 먹으면 엔도르핀이 분비돼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고추에 함유된 캡사이신이 고온을 감지하는 수용체를 활성화해 뇌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엔도르핀을 분비해 진통 효과와 쾌감을 느끼는 원리다.

자극적인 음식, 자극받는 몸

매운 음식을 건강하고 알맞게 섭취한다면 여러 이점을 얻을 수 있다. 매운 음식에는 캡사이신이 들어 있어 신체의 신진대사를 촉진하며, 이는 체온을 높여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킨다. 칼로리가 소모되기에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며 항산화 효과와 항염증 효과 덕분에 세포 손상과 여러 염증 및 암 질환 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매운맛의 과도한 섭취는 몸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우리나라의 매운 음식들은 대부분 짜고 기름지다. 높은 나트륨 함량은 고혈압을 유발한다.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속을 달래기 위해 단 음료를 곁들이는 행위 역시 고혈압을 불러온다. 매운맛의 과다한 섭취는 속쓰림, 소화불량을 유발하며 소화기관의 점막을 손상시켜 위염과 위궤양의 발생률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주의해서 먹어야 한다.

이은희 교수는 “앞으로도 단순한 매운맛이 아닌 불닭볶음면처럼 색다른 방식의 다양화가 시도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인에게 소울푸드로 자리매김한 매운맛은 이제 우리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다. 더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매운맛을 건강하게 즐길 수 있도록 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정희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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