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

지난달 5일부터 8일까지 3박 4일간, 서울시립대신문은 일본 오키나와현을 방문해 특별취재를 진행했다. 오키나와는 관광객의 약 85%가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을 만큼 자국민에게도 신비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여겨진다.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오키나와가 갖추고 있는 독특한 자연환경과 역사는 고유의 문화와 건축 양식을 형성했다. 
오키나와 현지인들의 생활 방식부터 근현대사, 관광지가 가진 불편한 진실까지 오키나와의 이모저모를 기사로 담았다. -편집자주-

 

응답하라, 오키나와

곳곳에 남아 있는 류큐 왕국과 미국, 일본의 흔적 때문일까. 오키나와을 여행하다 보면 이곳의 시간이 2024년이 맞는지 의문이 들곤 한다. 과거의 향수를 몸소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 ‘국제거리’가 있다. 우리는 국제거리 내부에 있는 ‘제1마키시 공설시장(이하 마키시 시장)’에 먼저 방문했다. 

오키나와인의 세 끼를 모두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마키시 시장에는 해산물부터 육류까지 다양한 식료품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다. 현지인으로 가득 찬 1층을 지나 2층으로 향하면 외국인도 시장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1층에서 구매한 재료를 활용해 오키나와 전통 요리를 만들어 준다. 시장을 나가면 이어지는 약 1.6km의 국제거리 또한 형성 당시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이명원 교수는 “마키시 시장이 있는 오키나와 국제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오키나와 주민들이 삶의 재건을 시작한 상징적인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습지였던 국제거리는 미국이 오키나와를 점령하면서 개발이 이뤄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하시청이나 오키나와청, 류큐신보사 등 오키나와의 주요한 관공서와 언론사들이 집중된 중심지이기도 하다. 
 

▲ 제1마키시 공설시장에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한 사람들이 가득 찼다.
▲ 제1마키시 공설시장에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한 사람들이 가득 찼다.

오키나와 토산품 판매가 성행하는 국제거리의 모습은 서울의 ‘남대문 시장’이나 부산의 ‘국제시장’처럼 전통시장의 형태를 띤다. 이 교수는 “1980년대 이후 오키나와가 지방 관광 활성화를 위한 관광입현으로 변모함에 따라 다양한 호텔과 음식점, 오키나와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상점가 등이 정비됐다”고 말했다.

과거를 연상할 수 있는 모습은 시장과 거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키나와의 크기는 제주도의 약 3분의 2에 불과하지만 인구는 약 146만 명으로 2배 이상이다. 오키나와에는 우리나라 경전철과 같은 경편철도가 존재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파괴됐다. 1945년부터 시작된 미군 기지 진입은 철도 건설을 지금까지도 어렵게 만들었고, 이는 높은 인구 밀집도를 감당하기에 버거운 교통망으로 이어졌다. 현재 오키나와 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교통수단은 ‘유이레일’로 불리는 모노레일과 버스, 자가용뿐이다. 

80세는 어린아이? 

1973년부터 2004년까지 오키나와는 일본 내 기대수명이 가장 긴 곳이었다. 이를 기념하고자 오키나와는 ‘세계장수지역선언’을 발표했고 세계보건기구(WHO) 또한 오키나와 북부의 오기미손을 세계 최고 장수 지역으로 인정했다. 오기미손 입구에는 ‘장수 일본 제일’이라고 적힌 석비가 있다. 
 

▲ 오키나와현 오기미손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비석
▲ 오키나와현 오기미손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비석

석비에는 “80세는 어린아이”, “90세에 저승사자가 오면 100살까지 기다리게 해라”와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오키나와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이명원 교수는 건강한 식문화와 생활문화를 언급했다. 이 교수는 “고야나 두부, 해산물을 활용한 건강한 식문화뿐만 아니라 정신적 태도도 장수에 한 영향을 끼쳤다”며 “현세를 긍정하며 내세에 대한 믿음도 강해 현실에서의 욕망 과잉을 억제하는 생활 원리가 유지됐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되겠지’를 의미하는 ‘난쿠루나이사(なんくるないさ)’를 통해 조급해하지 않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오키나와 특유의 라이프스타일이 비유되기도 한다. 또한 지리적 측면에서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섬나라이기에 소금 바람이 자주 불어 공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꽃가루를 날리는 수목이 없어 공기가 맑다. 일 년 내내 온난한 기후는 땅을 초록색으로 뒤덮어 눈과 우울증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최근 오키나와의 기대수명이 줄고 있다.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일본의 후생노동성은 지난 2021년 일본의 비만율을 보고했다. 일본 남성의 평균 비만율은 약 29.5%였지만 오키나와 남성의 평균 비만율은 약 38.4%로 일본 전역에 비해 약 10%를 웃도는 수치를 보였다. 

높아진 비만율은 기대수명 하락으로 이어졌다. 불변의 1위였던 기대수명 순위는 47개의 광역자치단체 중 2021년 기준 36위로 떨어졌다. 기대수명이 짧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미군이 들여온 패스트푸드나 스테이크, 스팸 등의 식문화는 젊은 세대의 건강 문제를 야기했다”며 “오키나와 전체가 사실상 미군 기지촌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미군 범죄나 문화로 인한 정신 건강 악화 문제도 심각하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후생노동성은 해산물과 해조류가 전통 식단으로 자리 잡았던 과거와 달리 오키나와 내 인구 10만 명당 패스트푸드 점포 수는 약 7개로 도쿄를 뒤따라 2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편리하지 않은 대중교통 탓에 약 86%에 육박한 자가용 의존율은 오키나와 내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증가시켰고, 이는 일상생활 속 움직임을 더욱 줄어들게 하는 원인이 됐다.

우리나라에 해치가 있다면, 일본에는 시사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선악을 구별하고 정의를 지키는 전설 속의 동물 ‘해치’가 있다. 오키나와에도 개와 사자의 모습을 지닌 신화 속 동물 ‘시사(シ—サ—)’가 있다. 시사는 중국에서 기원해 오키나와에서 토착화된 상징의 수호신이다. 시사는 암수 한 쌍으로 구성돼 어딜 가든 건물 입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오키나와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오키나와인들은 입을 벌리고 있는 시사는 남자를 뜻하며 악을 내쫓고, 입을 다물고 있는 시사는 여자를 뜻하며 다문 입을 통해 복을 놓치지 않고 선한 기운을 지킨다고 믿는다. 
 

▲ 악을 내쫓고자 시사가 입을 벌리고 있다.
▲ 악을 내쫓고자 시사가 입을 벌리고 있다.

바다로 사방이 둘러싸인 오키나와는 소금 바람으로 인한 녹을 방지하고자 시멘트 노출 공법이 보편화됐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배 하에 있었던 탓에 목조 건물보다 콘크리트 건물이 주를 이루게 됐다. 차가운 회색 시멘트 건물은 한때 도시를 밋밋하게 만들었으나 오키나와는 이를 도시 이미지 형성에 이용했다. 발코니나 테라스를 만들어 각 건물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도시에 녹아들 수 있도록 했고 시멘트 외벽은 광고의 성지로 발전했다.

오키나와는 1972년 일본에 편입되며 이번해 53주년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이사이(はいさい)*”라는 간단한 인사말부터 사람들의 생김새, 섬의 탄생 역사까지 일본 본토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지루한 일상 속 색다름을 경험하고 싶다면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가깝지만 먼 일본 오키나와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하이사이(はいさい): 안녕하세요를 뜻하는 오키나와 전통말로, 일본 본토에서 보편적인 인사말로 사용하는 곤니치와(こんにちは)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세나 객원기자 
lsn030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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