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 「세계 인권 선언」 제1조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인 자유를 누리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자유가 있음을 강조한다. 지구상 최상위 먹이사슬에 위치한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이 땅의 주인이 됐다. 그러나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의 생명들은 충분한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 인간이 주장하는 ‘종 다양성 보존’과 ‘사랑’이라는 가치 아래 죽어가고 있는 생명들을 살펴봤다.
 

▲ 고래상어가 살고 있는 쿠로시오의 바다. 수조 앞에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가득하다.
▲ 고래상어가 살고 있는 쿠로시오의 바다. 수조 앞에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바다에 갇힌 해양생물의 속사정

일본의 오키나와에는 일본 최대, 아시아 2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츄라우미 수족관이 자리잡고 있다. 오키나와 방언으로 ‘아름다운 바다’라는 의미를 가진 츄라우미 수족관은 이름에 걸맞게 화려하고 다양한 생물종을 보유하고 있다. 바다에서 가장 큰 물고기인 고래상어부터 각종 심해어, 세계에서 최초로 인공번식에 성공한 쥐가오리 등 수많은 종의 물고기가 이곳에서 호흡 중이다. 
 

▲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세계 최초로 인공번식에 성공한 만타가오리
▲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세계 최초로 인공번식에 성공한 만타가오리

츄라우미 수족관은 심해부터 회유어들이 유영하는 구역, 산호초 지역까지 바다의 모든 부분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거대한 산호 수조는 오로지 바닷물로 가득 차 있다. 특수한 종의 산호와 물고기를 최초로 채집·사육·번식시키는 것은 츄라우미 수족관의 가장 큰 목표이자 자랑이다. 인간을 위해 재현한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커다란 고래상어와 해양생물들은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진정한 바다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츄라우미 수족관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사람’이었다. 평일에 방문했음에도 수족관 어플리케이션에 표기된 관내 혼잡도는 70%를 훨씬 웃돌았다. 복도를 가득 메운 인파를 거닐다 보면 파란 수조에 다닥다닥 붙어 물고기를 가리키는 손가락들이 눈에 띈다. 수조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줄을 서기도 하고, ‘NO FLASH’라고 기재돼 있는 딱지는 우습다는 듯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고 빠르게 자리를 뜨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인생샷’을 남기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한 츄라우미 수족관은 인간이 관람을 위해 채집한 수많은 해양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집이기도 하다. ‘쿠로시오의 바다’라는 용량 7500㎥(깊이 10m·폭 35m·안 길이 27m)의 수조 안에는 츄라우미 수족관의 대표 마스코트인 고래상어가 쥐가오리 등 여러 물고기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츄라우미 수족관의 홈페이지에는 “세계 최대급의 대형수조에서 고래상어의 번식을 목표로 복수 사육을 실현했습니다”라고 기재돼 있지만, 직접 찾은 쿠로시오의 바다에서는 4m 남짓한 고래상어 한 마리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오키나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관광 투어를 진행하는 정은이 가이드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츄라우미 수족관에는 8m 길이의 고래상어가 살아 있었지만 지금은 폐사해 한 마리 밖에 남지 않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쿠로시오의 바다는 과연 8m의 고래상어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었을까. 신장 1.6m의 기자가 거주하는 원룸의 공간을 측정해봤다. 가로 4.9m에 세로 3.2m, 높이 2.2m다. 심지어 수조의 3면은 인간이 관람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개방돼 있었다. 성인 한 명이 수십 마리의 동물과 함께 통창으로 삼면이 뚫린 5평 원룸에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폐사한 8m 고래상어는 아직 성체에 이르지 못한 발육 상태였다. 고래상어는 현존하는 어류 중 가장 큰 종이며, 성체의 몸길이는 최대 17m에서 21m에 이른다. 쿠로시오의 바다는 성체로 자란 고래상어에게 옴짝달싹 못 하는 관 정도의 공간이 된다. 고래상어에게는 원룸 크기일 좁은 공간에서 고래상어의 번식과 사육에 성공하겠다는 츄라우미 수족관의 시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자연의 ‘재현’ 아닌 ‘전시’

수많은 동물들이 동물원과 수족관(이하 전시관)에서 태어나고 죽는다. 자연에서 전시관으로 옮겨져 생을 마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달 13일, 서울동물원에 전시되던 아시아코끼리 ‘사쿠라’는 한 살부터 시작된 전시동물의 삶을 59세의 나이로 마감했다. 
 

▲ 관람객이 뿌린 먹이를 먹기 위해 올라온 바다거북. 식사를 마친 뒤에는 다시 바닥으로 내려갔다.
▲ 관람객이 뿌린 먹이를 먹기 위해 올라온 바다거북. 식사를 마친 뒤에는 다시 바닥으로 내려갔다.

츄라우미 수족관의 홈페이지와 팸플릿에는 “동물에 관한 조사연구를 실시하며 그 성과를 생물의 보호나 육성, 다양성 보전 등에 환원하고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하지만 자연을 누비던 생물체를 포획해 가두는 전시관의 행위가 생물의 보호와 육성, 다양성 보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 

전시관은 동물들의 아늑한 집이 아닌, 생명을 위협하는 혼란의 장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관람객이 사진을 찍기 위해 플래시를 터뜨리자 빠르게 헤엄쳐 온 다랑어가 쿠로시오의 바다 유리에 충돌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시관 내 유리창과 철창은 동물을 보호하기보다, 인간에게 보여지기 위한 목적을 우선시한다. 더불어, 광활한 자연이 아닌 전시관에서 살아가는 동물에게는 인간을 즐겁게 할 의무가 부여된다. 

츄라우미 수족관은 ‘바다거북 밥 주기’, ‘듀공 전시관’, ‘돌고래 쇼’ 등의 프로그램을 위해 해양생물들을 사방이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수조에 모아 뒀다. 바다거북은 천장이 완전히 개방된 수조에서 아이들이 던지는 양배추를 한없이 받아먹고 있었다. 양배추를 받아먹는 것 외에는 한정된 공간의 수조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있거나, 위아래로 조금씩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듀공 전시관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으며, 돌고래 관은 내부 사정으로 운영이 중지된 상태였다.
 

▲ 좁은 수조에 갇혀 양배추를 먹고 있는 듀공
▲ 좁은 수조에 갇혀 양배추를 먹고 있는 듀공

바다나 밀림 등 해당 동물이 살기 좋은 환경을 재현했다지만, 전시관은 온전한 자연과 동일해질 수 없다. 인간이 도시와 지상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생물들은 온도·빛·압력 등 여러 요소가 충족된 환경에서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츄라우미 수족관은 수심 200m 이상 깊이에 있는 심해어들을 특수 기술을 적용한 잠수정을 사용해 끌어올린다. 

이렇게 건져진 심해어들은 연구 대상이 되거나 전시를 위해 좁은 어항에 들어가게 된다. 심해어 전시관에서 만난 이사쿠라 나코(16) 씨는 “고래상어와 심해어 등 처음 보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신기하다”면서도 “이렇게 작은 유리벽 사이에 여러 마리가 갇혀 있는 게 슬프다”고 이야기했다. 

동물은 인간의 장난감이 아니다 

전시관에서의 동물 복지 문제를 넘어, 동물 복지에 대한 개인의 무지도 문제다. 지난 1월 유튜버 ‘사모예드 티코’의 한 영상이 논란이 됐다. 펫 로스는 반려동물을 잃은 이들이 겪는 극도의 상실감과 우울감을 일컫는다. 펫 로스를 겪던 사모예드 티코의 채널주는 <우리 강아지가 돌아왔어요>라는 영상을 올리며 죽은 반려견 ‘티코’를 복제해 키우고 있음을 밝혔다. 故 이건희 삼성 회장 또한 충남대학교 동물자원과학부를 통해 세상을 떠난 반려견 ‘벤지’를 복제했으며 벤지의 복제는 7호까지도 이뤄졌다. 

본격적으로 반려견 복제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티코를 복제한 사업장의 환불 정책이다.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을 시 그를 회수하고 폐기를 진행한다’는 문구는 생명을 물건처럼 취급한다는 논란을 빚었다. 오랜 기간 반려견과 함께해 온 김시연(21) 씨는 “동물 전시관, 펫샵과 같이 돈을 주고 동물의 생명을 다루는 것은 옳지 않다”며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가 심히 부족한 사람들이 동물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진정으로 동물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동물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단계가 선행돼야 할까. 첫 번째는 동물 전시관의 철폐다. 대구 달성공원의 침팬지 탈출, 경북 고령의 목장의 암사자 탈출 사례와 같이 동물들은 인간의 이기심이 투영된 인위적인 환경에서 도망쳐 나오고 있다. 

동물의 권익을 보호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는 동물권행동 카라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동물원은 동물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소비하는 단순 유락·전시시설에 불과하다”며 “이미 벌어지고 있는 전시 동물들의 탈출과 고통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 야생동물을 위한 보호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물원이 보호시설이자 교육시설인 ‘생츄어리(Sanctuary)’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인이 쉽게 동물을 사고팔 수 없게 하는 제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지난 2016년, SBS TV동물농장은 <강아지 공장의 불편한 진실>을 통해 펫샵에서 유통될 강아지를 ‘만들기’ 위해 동원된 모견의 처참한 삶을 적나라하게 방영했다. 

이미 2017년부터 미국의 캘리포니아주가 펫샵의 반려동물 판매를 법적으로 금지했고, 핀란드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그 뒤를 잇고 있다. 지난해 4월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보호법』을 개정하며 반려동물 생산 및 판매업을 허가제로 변경했고, 2개월 미만의 반려동물을 판매할 경우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아직도 종로나 을지로 등 오래된 거리를 걷다 보면 반려동물 펫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반려동물 판매업이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동물원에서 탈출한 동물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며 “전시관과 펫샵에서 자유를 착취당하는 동물들이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되는 곳에서, 마음껏 살아갈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태계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동물보호법』이나 『수족관법』이 개선되고 그를 집행할 수 있는 행정력이 마련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인간과 동물’이 아닌,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종’의 생명이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적극적인 변화가 시작돼야 할 때다. 


신연경 기자 
yeonk486@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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