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의 서재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 11월에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선거에서 경제 문제가 쟁점이 되는 것은 이제 이상하지 않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으로 조지 부시를 꺾고 당선됐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명박 후보가 이른바 747공약을 앞세워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는 7% 경제성장, GDP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 대국을 상징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는 국가 전체의 경제를 의미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사이먼 쿠즈네츠는 국민소득 추계 방법을 제안했다. 대표적인 국민소득 통계인 국내총생산(GDP)은 일정 기간 일국에서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 시장가치의 합계로 정의된다. 이를 인구로 나눈 1인당 GDP는 국민의 후생 수준을 파악하는 데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GDP가 더 빨리 증가하면, 즉 경제성장률이 높으면 항상 좋은 것인가? 미국의 GDP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30% 성장했음에도 미국의 백인 중년 남성 사망률은 다른 서구 선진국과 달리 2000년 이후 감소하지 않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이는 자살, 약물 중독 등 이른바 절망에 의한 죽음에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결국 2000년 이후 미국 경제는 꾸준히 성장했음에도 국민의 후생 수준은 악화해 왔음을 시사한다.

데이비드 필링은 만들어진 성장에서 이와 같은 이슈를 다루고 있다. 국민소득 통계가 갖는 문제점의 근원은 그 통계의 생산을 위해 어떤 요소가 포함될 것인가로 귀결된다. 예를 들어, 마약, 매춘 등을 제외하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핵무기가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불가피하다. 

국민소득에 어떤 요소를 포함하느냐는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담배 생산량이 포함되면 담배 생산뿐만 아니라 흡연으로 인한 암 환자의 치료비도 국민소득을 증대시키게 된다. 한편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 수입은 정부지출의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으므로 간접적으로 국민의 후생을 향상한다. 따라서 정부는 흡연을 장려하는 정책을 암묵적으로 펼 수도 있다.

저자는 국민소득 통계가 갖는 문제점으로 (1) 환경, (2) 삶의 질, (3) 공공서비스의 가치 측정 등을 지적하고 있다. 먼저 시장가치로 평가하기 어려운 수자원이나 대기 등의 환경자원은 국민소득 추계 시 고려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경우 환경 파괴를 용인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더구나 환경은 유권자의 큰 관심사도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 의정서 탈퇴는 다수 미국 국민의 지지를 받은 바 있는 반면 케빈 러드의 경우 탄소배출 거래제를 도입하려 했으나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해 호주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한편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가사 및 개인서비스 활동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만 국민소득에는 계상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모유 수유는 신생아의 건강에 매우 유익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국민소득의 관점에서 보면 분유 판매를 저해함으로써 국민소득을 낮추게 된다. 공공서비스의 측정과 관련하여 국가에서 운영하는 대중교통, 도로 등의 서비스가 창출하는 가치는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으므로 효과적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와 같은 공공서비스가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민영화할 경우 경제성장은 촉진할 수 있으나 가격을 급등시켜 국민의 후생 수준을 감소시킬 위험도 존재한다.

1934년에 쿠즈네츠는 국민소득 추계 결과를 의회에 보고하면서 국민소득은 체계적인 추론에 불과하며 국민소득으로부터 국민의 후생 수준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실토한 바 있다. “더 나은 통계는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낳는다(Better statistics, better decisions)”라는 영국 통계청의 모토가 시사하듯 기존 통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는 인내심을 갖고 지속돼야 한다.


제목| 만들어진 성장 
저자| 데이비드 필링
출판| 이콘
중앙도서관 청구기호| 321.93 필976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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