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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무슨 불에 건너시나요?” 언뜻 보면 간단한 질문이다. 우리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켜지는 신호등 색은 명백히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세대별로 달라지곤 한다. 저연령층은 실제 신호등의 색인 ‘초록불’에 건넌다고 답한다. 그러나 일부 고연령층은 ‘파란불’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들은 초록색인 신호등을 왜 파란불이라고 부르고 있을까. 그 해답을 언어인류학을 통해 알아봤다.

세상을 보는 하나의 창, 언어

언어인류학은 사회, 문화와 의사소통에 사용되는 언어 간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사고와 언어의 관련성을 처음 제기한 것은 ‘사피어 워프 가설(이하 사피어 가설)’이다. 언어인류학자 에드워드 사피어는 “인간은 객관적인 세상에서만 살아가지 않는다”며 “‘진짜 세상’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언어 습관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다”고 말했다. 

언어학자 벤자민 워프도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는 재생 도구일 뿐만 아니라 생각을 형성하는 도구”라고 주장했다. 1950년대의 언어학자들은 두 학자의 주장을 통해 언어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과 태도,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다. 언어인류학을 연구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HK 세미오시스 연구센터 고경난 교수는 “사피어 가설은 궁극적으로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관한 내용”이라며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주는지, 준다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사피어 가설은 20세기 중반까지는 주로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언어결정론’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20세기 후반까지는 언어가 사고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언어와 사고 간 관계가 존재한다는 ‘언어상대성’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고 교수는 “언어결정론은 언어인류학에서 누적된 기존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둘 뿐 근거가 불충분”하다며 “언어인류학에서는 현재 언어와 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가 아닌 서로 ‘영향을 준다’로 정리된 상태”라고 이야기했다.

한국 사회로 본 언어와 문화의 상호작용

고연령층이 초록불과 파란불을 혼용하는 이유 역시 언어 때문이다. 그들도 분명 초록과 파랑을 시각적으로는 다르게 인식한다. 그러나 연령별 기초 색채어*에 두 색 포함 여부가 달라 초록과 파랑을 명확하게 구분해 사용하지 않는다. 마치 두 색을 하나의 범주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김선희 교수가 2000년에 발표한 「한국 색채 범주 체계의 세대 간 차이와 구분법의 발달 과정에 대한 연구」는 고연령층과 저연령층은 색깔을 구분 짓는 기초 색채어가 다르다고 설명한다. 고연령층의 기초 색채어는 흰색, 검정, 빨강, 노랑, 파랑의 5가지로 구성된다. 

반면 저연령층의 경우 흰색, 검정, 빨강, 노랑, 녹색, 파랑, 갈색, 보라의 8가지로 나뉘어 있다. 기초 색채어의 차이에 따라 고연령층에게 파랑이라는 단어는 녹색과 파랑을 지시하고 저연령층의 경우는 파랑만을 의미한다. 이처럼 고연령층의 파랑이 저연령층에게는 녹색, 파랑 두 색깔을 포함하는 합성 범주라는 점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그들이 가진 기초 색채어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색도 다르게 표현하게 된다. 

한국의 어촌 사회도 언어인류학 사례 중 하나다. 한국의 어촌 사회는 생계유지를 위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야 했다. 이때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은 어획량 및 안전과 관련되어 어민들의 어로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바람의 중요성으로 인해 한국 어촌 사회에서는 농촌이나 도시와 달리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기준으로 ‘늦바람’, ‘마파람’, ‘샛파람’, ‘하누바람’ 등 바람을 상세히 구별하는 명칭이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언어, 잃어갈 우리의 정체성

언어는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보존하는 핵심 요소다. 2003년 출간된 영국의 인류학자 다니엘 네틀의 저서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은 “언어는 복장, 행동 양식, 종교나 직업 등 여러 특성과 더불어 집단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며 “언어는 그 문화 특유의 것이기에 사람들은 언어가 사라질 때 자신들의 전통문화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린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인지과학을 연구하는 레라 보로디츠키 교수는 2008년 테드(TED) 강연 <How Language Shapes the Way We Think>를 통해 “우리는 거대한 힘을 가진 언어를 계속해서 잃어가고 있다”며 “매주 하나의 언어를 잃고 있으며 100년 뒤에는 언어의 약 절반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언어가 사라지면 우리의 전통문화와 정체성도 잃을 수 있다.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인 언어를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할 때다.

*기초 색채어: 브렌트 벌린과 폴 케이의 연구에서 사용된 용어로 11개의 보편적인 색채 범주를 지시하는 색깔 이름


설해빈 수습기자 
shb275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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