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check - 행복@로컬

현대에서 로컬(local)이라는 단어는 지방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행복@로컬』의 저자인 우리대학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는 로컬의 의미를 다르게 정의한다. 비수도권, 중소도시, 구도심, 시골. 의미는 여러 가지이지만 분명한 것은 로컬 또한 우리가 살 수 있는, 그리고 누군가가 자라온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갈망하는 행복의 비밀을 찾아 떠난 정석 교수의 로컬 한달살이를 살펴봤다.-편집자주-

대한민국은 한 권의 책이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은 자는 그 책의 단지 한 쪽만 읽었을 뿐이다.” 정석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려 대한민국은 한 권의 책이며, 로컬을 여행하지 않은 자는 그 책의 단지 한 쪽만 읽었을 뿐이라 말한다. 
 

전국 8도, 그 안의 여러 시와 구, 동. 한국어가 모국어인 유일한 땅이면서도 방언의 종류는 수십 가지인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전통과 역사가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집중되는 인구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솟은 집값에도 21세기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서울만을 살만한 곳이라 치부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친구따라 강남 간다.” 다양한 속담에서도 우리나라 사람의 서울 열망은 줄기차게 이어져왔다. 사람들은 왜 서울로 향할까. 어떻게 대한민국의 서울은 ‘성공’의 대명사가 됐을까.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은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성장거점개발 전략을 내세웠다. 국토를 밑바탕에서부터 차근차근 발전시키기보다 성장의 거점을 집중적으로 개발시킨 것이다. 국가의 지원 아래 현대, 삼성, 럭키, 금성 등의 대기업을 주축으로 서울과 부산이 대도시가 됐고, 두 도시를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며 국가 재정은 경부축에 집중됐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1980년대에 이르러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천 달러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 폭발적인 성장의 대가가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죽을 지경인데 대기업은 끄떡없고, 중소 도시와 농산어촌은 소멸 직전인데 국토의 11.8%를 차지하는 수도권의 인구는 2019년에 과반을 넘긴 뒤 계속 늘고 있다.” 지원을 요청하는 타 지역들은 ‘낙수 효과’를 강조하는 정부에 의해 배제되기 일쑤였다.

로컬에서의 삶, 로컬을 사는 사람들

정석 교수는 연구년을 맞아 하동, 목포, 전주, 강릉을 돌아다니며 한달간 살았다. 로컬에서 아름다운 강산과 물길, 맑은 공기와 하늘은 시간을 내어 찾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 언제나 그 자리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이 된다. 

하동에서의 삶 속에서 정 교수는 몇 차례고 지리산을 마음껏 오르고, 섬진강을 지나갔다.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바다를 즐기고 독일마을에서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여행이 아닌 일상이었다. 읍내에서 현지 스타일로 머리도 잘라보고, 개량 한복을 사거나 밀짚모자를 쓰고 걷다 보면 별 거 아닌 일임에도 그 자체로 즐거운 하루가 된다. 

조급해 하지 않고 꽃과 익어가는 과일을 즐겼고, 마을을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는 일은 특별한 일이었다. “이런 체류형 로컬 여행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내다보는 데 좋은 계기이자 전환점이 되어 준다.”

책에서는 로컬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의 인생을 엿볼 수 있다. 귀농이나 귀향을 떠올렸을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은 먹고 사는 수단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그런 걱정은 우습다는 듯 힘껏 자생하고 있었다. 각지의 청년들이 모여 만든 ‘고하버거’부터 농가 레스토랑 ‘지리산 대박터 고매감’, 와이너리와 농장까지 로컬을 해치지 않고, 상생하는 삶의 형태가 경이로웠다.

도시를 벗어나, 정말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로컬은 어쩌면 우리가 꿈에 그리던 유토피아가 아닐까. 수많은 로컬인들의 삶을 읽다 보면 “나는 이곳 서울에서 행복한가”라는 의문이 자꾸만 떠오른다. 모두가 서울을 외치지만, 모두가 서울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정 교수는 “사람과 장소도 궁합이 있다”며 “힘들다고 느끼는 분들이 로컬 여행을 많이 해보고, 나에게 잘 맞는 곳을 한번 찾아보면 좋겠다”고 추천했다. 이어 “로컬이라는 말에는 ‘저마다 다르다’는 뜻도 있다”며 “모든 로컬은 저마다 다르고, 사람 또한 그렇기에 각자의 특색과 맞는 곳에서 다양하게 행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로컬에게 필요한 것은 ‘소다연강미’

하지만 로컬들은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모습으로 전락하고 있다. 전체 인구와 출생율은 줄고 있지만 국가와 기업들은 계속해서 아파트를 쌓아 올린다. 그린벨트와 군사시설 보호구역도 해제됐다. 산업공단이나 신도시 개발이 그 이유다. 정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 땅에 있는 빈집만 100만 채, 지방의 아파트 미분양은 일상이다”라며 “빈곳에 사람들을 채우려 하기보다 새로 개발하게 된다면 지역성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 8도에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많음에도 우리는 왜 로컬로의 첫 걸음을 떼기가 어려울까. 로컬에는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위한 교통 시설이나 보급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은 탓에 모든 이동을 자가용에 의존한다. 대부분의 로컬은 타 로컬과 서로 분리돼 있으며, 서울 등 대도시와도 잘 연결돼있지 않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GTX, 『철도지하화특별법』과 함께 이미 ‘대’도시로 구성된 수도권을 ‘거대’도시로 확장하는 메가시티 정책을 추진 중이다. 

도태되고 있는 대한민국 국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석 교수는 그 해답을 ‘소다연강미’라고 말한다. 작은 존재들이 서로 연결하고, 연대하고, 연합하면 아름답고 강할 수 있다. 

정 교수가 제안한 첫 번째 방안은 BRT(Bus Rapid Transit), 간선급행버스체계다. BRT를 통해 로컬과 로컬을 연결한다면 로컬 간 연결성과 연대가 높아짐과 동시에 성장 또한 가능하다. 두 번째는 교통이 부족해 자가용만으로 이동이 가능한 자가용 도시에서, 대중교통과 자전거, 보행을 통해 이동하는 ‘대자보’ 도시로 나아가는 것이다. 

새로 철도를 파기 위해서 드는 돈은 GTX의 경우 1km에 2천억 원, 지하철은 1천 500억 원, 트램은 500억 원이다. 반면 BRT는 1km에 30억 원으로 매우 낮은 비용이 든다. 정 교수는 “지방의 소도시에도 이미 도로가 다 닦여있으니, 주요 지점만 정차하는 BRT를 빨리 운행시켜 지방에서의 교통을 편안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을 너무 힘든 곳에서 찾으려 하는 건 아닐까. 로컬도, 사람도. 우리는 모래알처럼 작은 존재이지만 함께라면 강할 수 있다. 『행복@로컬』을 읽다 보면 나와 꼭 맞는 행복이 로컬 어딘가서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반드시 존재할 그 행복을 찾아나갈 용기를 이 책과 함께 빌어보는 건 어떨까. 소다연강미라는, 로컬의 정석을 떠올리며 말이다. 


신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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