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 성향 민간단체들이 유해 도서로 지정한 『달라도 친구』
▲ 보수 성향 민간단체들이 유해 도서로 지정한 『달라도 친구』

도서를 불사르고 지식인을 산 채로 땅에 묻은 ‘분서갱유’는 진시황이 학문과 사상을 통제한 역사적 사건이다. 예로부터 통치자나 권력자는 사회 체제를 위협한다거나 대중을 선동한다는 이유를 들어 금서를 지정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금서 지정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21일 러시아 독립 언론 메두자는 「오스카 와일드, 무라카미, 그리고 도스토옙스키」라는 기사에서 러시아 정부에서 지정한 금서 리스트를 공개했다. 성(性) 관련 묘사가 있다는 이유였다. 부당한 금서 지정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는다.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 VS “바람직한 성교육의 일부다”

‘금서’란 특정 기관이 출판과 유통 및 독서를 통제하기 위해 판매가 금지된 도서 또는 글이다. 1970년대부터 이뤄진 우리나라의 금서 논쟁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오늘날 금서 지정의 주체는 민간단체로 확장됐다. 지난해 7월 전국학부모연합회 소속 보수 성향 학부모들과 충북 청주의 보수 성향 시민단체 행동하는학부모연합회 대표는 청주 지역의 공공도서관에 성을 다룬 117종의 도서를 ‘유해 도서’라고 지칭하며 폐기를 요구했다. 

아직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어린이가 성행위가 적나라하게 묘사된 도서들을 읽었을 때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청주 지역의 몇몇 도서관들은 이를 받아들여 해당 도서들을 서가에서 퇴출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양창섭 교육홍보팀장은 “출판의 자유는 곧 표현의 자유와 마찬가지”라며 “도서의 유해성을 판단하는 주체는 독자, 도서관, 시장이기에 특정 집단이 도서의 유해성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무조건 따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부당한 검열에 맞서는 도서관들

도서관은 금서 지정 민원에 어떻게 맞서고 있을까. 한국도서관협회와 공공도서관협의회는 지난해 7월 「도서관에 대한 일체의 검열 반대와 지적 자유 수호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도서관은 누구나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자료를 수집하고 이념적, 종교적 중립성을 확립하는 기관임을 강조했다.

보수 성향 민간단체의 무리한 민원에도 지적 자유를 포기하지 않은 도서관도 있었다. 특정 집단이 유해 도서로 지칭한 도서를 보유하고 있는 동대문구 휘경어린이도서관을 방문했다. 민원이 제기된 도서인 『달라도 친구』, 『어린이 페미니즘 학교』는 서가에 진열돼 있었으며 『꽃할머니』는 도서 반납함에 놓여 있었다. 휘경어린이도서관의 사서 A씨는 “진정 어린이를 위한다면 어린이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아이들의 도서 선택권을 제한하지 않고 알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전했다. 

다시 떠오르는 ‘금서 논쟁’, 해결책은 어디에

현재 우리나라의 금서는 어떠한 기준을 통해 지정될까. 민원이 제기된 도서들은 도서관 내부의 도서관운영위원회 또는 자료선정위원회를 통해 심의 절차를 밟게 된다. 도서관의 금서 결정 기준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짐을 명시한다’는 『헌법』 제21조에 따라야 한다. 다만 도서관별 위원회 구성원이 각자 다른 의견을 가지는 만큼 실제로는 도서관마다 금서 기준이 상이하게 적용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각에서는 금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금서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A씨는 “정책적 차원에서 금서 관련 법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서는 이번해부터 학교나 공립 도서관에서 성소수자·인종 문제 등을 다룬 도서를 금서로 지정할 수 없도록 규정한 『금서 금지법』을 도입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학교·공립 도서관은 젠더·인종 관련 도서를 제한하거나 금지한다면 정부의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도서관은 법안 수립 시작조차 어려운 상태다. 대통령 자문위원회 소속의 국가도서관위원회 제7기 임기가 만료된 지난 2022년 4월 이후 새로운 위원회 구성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막무가내식 금서 지정 민원은 도서관의 독립성을 점차 위축시켰으나, 국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A씨는 “아이들은 자신이 읽을 도서에 대한 선택권을 잃어가지만, 여전히 금서 관련 법안 제정은 미비하다”고 전했다. 미래를 이끌어나갈 다음 세대를 위한 해결책 마련과 꾸준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 동대문구의 휘경어린이도서관에서 대출 가능한 『꽃할머니』
▲ 동대문구의 휘경어린이도서관에서 대출 가능한 『꽃할머니』


최가은 수습기자 
cge0916@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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