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필수·지역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의과대학 정원 2천 명 확대와 필수 의료 패키지 정책」(이하 의대 증원)을 발표했다. 지난 2020년, 10년간 매년 400명씩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이 무산된 이후 약 4년 만이다. 
 

지난달 20일부터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전공의가 집단 이탈하며 의료 공백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8일 기준 전체 전공의 비율의 92%인 1만 1985명의 집단 파업으로 병원은 마비됐다. 예정된 수술이 무기한 연기되거나, 의료진 부족으로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을 찾지 못해 응급실 뺑뺑이를 겪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 간호사는 의사의 업무까지 떠맡으며 업무 과중을 겪고 있다. 간호사가 고질적으로 겪어 온 업무 부담 문제와 해결책을 알아봤다. 

필요할 때만 찾는 PA 간호사 구체적 법안은 부재

정부는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 27일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이하 PA)’에게 의사 업무의 일부를 일시적으로 허용하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계획안」을 시행했다. 2010년부터 국내 병원에 등장한 PA는 수술·검사·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의사를 지원하는 진료지원인력으로 의사를 대신해 검사 시술 보조, 검체 의뢰, 수술장 보조 등을 맡기도 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PA 면허는 법적으로 규정되지 않았기에 PA의 의료행위는 불법에 해당했다. 『의료법』 제2조 5항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만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일은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전공의가 적은 분야에서는 이미 PA가 수술 보조 및 봉합, 수술 후 처치 등 전공의를 대신해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해 행동하는 간호사회’ 이정현 위원은 “비뇨기과나 흉부외과 같은 경우 전공의가 존재하지 않는 병원도 많다”며 “이런 곳은 PA 없이는 병원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의료노조)이 발표한 「의료기관 의사부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PA 수는 1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위원은 “병원은 전문의와 전공의 인원에 맞는 적정한 진료, 처치, 수술이 진행돼야 하나,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급여가 적은 PA를 고용해 더 많은 진료와 수술을 진행하고 싶어한다”며 “정부의 이번 방침은 PA 고용을 확대해 병원의 실질적 수익 증대를 꾀하는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전부터 PA를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의사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 2020년 약 2만 7천 명의 의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국내 최대 의사 커뮤니티인 ‘인터엠디’가 의사 978명을 대상으로 PA 법제화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8.3%가 PA 법제화에 반대했다. 

이유로는 전공의 교육기회 박탈 등 장기적으로 의료 질 저하(44.7%)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 불분명(35.8%) ▲일자리 감소로 의사 간 경쟁 심화(12.4%)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의료노조 나영명 기획실장은 “현재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수가 적어 이들을 보조할 PA 인력이 필수”라며 “하지만 의사들이 PA 합법화를 반대하니 이것만큼 모순이 없다”고 피력했다. 

하지만 이번 파업으로 인해 PA 합법화 가능성이 다시 대두됐다. PA의 법적 보호망을 마련하라는 요구에 따라 지난 7일 보건복지부가 간호사를 일반·전담·전문 간호사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특히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던 PA를 ‘전담 간호사’로 지정해 기대를 모았다. 이 위원은 “오랜 기간 논의돼왔던 PA 합법화의 가능성이 다시 보인다”며 “음지에서 매일 불안에 떨던 PA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표했다. 

간호사, 의사 업무 대리 수행의 고질적 문제

인천 모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일반 간호사 A씨는 의사 파업으로 인한 의료 공백과 업무 과중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A씨는 “원래 전공의가 수행하는 업무인 수술동의서와 검사 동의서 작성, L-tube 삽입 등까지 간호사가 담당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간호사의 업무 명시와 법적 보호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부터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시행했다. 보완 지침에 따르면 앞으로 모든 간호사들은 응급 상황에서 심폐소생술과 응급 약물 투여를 할 수 있다. 

이정현 위원은 “응급 상황에 사용하는 약물은 원래 의사 처방에 따라 투여할 수 있었지만, 이제 환자에 따라 간호사가 일일이 약물을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간호 인력의 권리 보장보다 의사의 업무를 떠넘기는 것을 더 우선시한 결과다.

한편 파업과 같은 극단 상황이 아닌 경우에도 간호사는 의사의 업무를 대리 수행해왔다. 지난 2021년 대한간호협회가 일반 간호사 1만 42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병원 교대근무 간호사 근무 환경 및 처우개선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66.2%가 의사 업무까지 하도록 요구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위원은 “병원의 진료과에는 전공의가 한 명도 없는 곳도 있다”며 “그런 병원은 교수가 혼자 수술하고 외래 진료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간호사가 군말 없이 의사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위원은 의사와 간호사 간 수직 관계를 원인으로 꼽는다. 그 이유는 “의사는 오더를 내리는 입장이고 간호사는 그 오더를 수행하는 입장”이라며 “항상 환자 생명을 치료하기 바쁜 병원의 상황 탓에 의사의 오더를 거부하거나 개별적으로 대항할 수도 없는 조직문화가 만연해 있다”고 밝혔다. 

불분명한 업무 분담도 하나의 이유다. 나영명 실장은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는 사실상 다른 역할이다”면서도 “시술, 드레싱, 처방 등 원래 의사 업무를 간호사가 수행해도 병원에서는 이를 묵인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간호사는 의사의 대체제가 아니다 

병원에서 간호사는 매우 중요한 인력이다. 나영명 실장은 “간호사는 병원, 의사, 환자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강조했다. 간호사를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하위 보조 인력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러한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가 ‘상호협력’ 관계로 일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됐다. 나 실장은 “의료 업무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특수적인 업무”라며 “다양한 직종이 서로 협력해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이 의료의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부서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며 “의사와 간호사뿐만 아니라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등이 모두 상호 협력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간호사의 열악한 처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이정현 위원은 “우리나라에서 간호사 면허를 보유한 사람 중에서 병원 임상 간호사로 일하는 사람은 절반밖에 없다”며 “근로 조건과 처우가 좋지 않아 사직률도 매우 높다”고 전했다. 이어 “단순히 간호 인력만 확대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를 법적으로 정하고 간호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파업이 장기화됨에 따라 『간호법』 제정에 대한 기대도 다시 대두됐다. 지난해 5월 대한간호협회가 추진한 『간호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같은해 5월 제20회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사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와 직역 간 갈등 유발 등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며 폐기됐다. 

그러나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따르면 정부는 『간호법』 제정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대한간호협회가 내놓은 새로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한덕수 총리는 “정부는 국민 보건체계를 강화시키는 의료개혁에 간호사 분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영명 실장은 “『간호법』은 간호사 인권을 보호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며 “보다 빠른 시일 내에 『간호법』의 재제정이 이뤄지기를 바랄 따름”이라고 전했다. 『간호법』 제정과 간호사의 업무 부담 해결책 마련에 대한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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