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보도부장
김동연 보도부장

지난날 강릉 경포호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호수는 언제나처럼 제자리에 고여 있었고 하늘은 늘 그렇듯 그 위를 덮고 있었다. 호수에 기자의 모습을 담아보려 호수 가장자리에서 애써 몸부림쳤지만 올곧은 시선을 돌릴 수는 없었다. 호수는 하늘만 볼 뿐 그 큰 웅덩이에 기자의 자리는 없었다. 호수와 하늘, 둘만의 세계에 발을 들인 기자였다. 

호수는 늘 제자리에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만, 자신의 정화 능력으로 그 자리와 형태를 유지한다. 기자는 의문이 생겼다. 저 호수는 무엇에 의해, 무엇을 위해 본래의 자리와 모습을 지키는 걸까. 아마 하늘을 비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늘에 대한 동경일지, 혹은 사랑일지, 호수는 그 마음을 중심축으로 어떠한 파동도 없이 자신을 보전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가 아닌 하늘을 보도록, 하늘을 온전히 품도록 가만히. 어쩌면 그러한 모습은 늘 꿈을 품고 살아가는, 그것만을 목표로 삼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진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자신 본래의 본능과 욕심은 가둔 채, 목표로 하는 종착지만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그것만을 비추는 형상에 감히 비난할 수 없었다.

먹구름이 드리우며 하늘이 슬피 울면 호수도 동감해 저에게 먹구름을 담아 같이 운다. 태양 빛이 머물러 하늘을 밝게 비추면 호수도 제 중심에 그 빛을 담아 같이 웃는다. 하늘이 제 물을 앗아가 다른 곳에 내리더라도, 제 진심이, 제 노력이 인정받아 하늘로부터 다시금 양분이 내릴 것을 기대한다. 호수 옆 바다는 저 혼자 찬란한 파도를 느끼며 사소한 바람에도 일렁인다. 호수와 달리 하늘 본래의 모습을 담지 못하고 푸른 빛으로 제 깊이만을 자랑한다. 바다의 찬란한 일렁임은 하늘을 제멋대로 담아 그 근본을 해친다. 

바다와 같이 몇몇 사람들은 제 목표보다는 자기 자신을 앞세우고 나아간다. 자신의 뛰어난 능력, 자신감, 놀라운 성과들을 자랑하기 바쁘다. 다만 그 깊이를 자랑하다 보면 색이 짙어져 목표를 담을 수 없고, 빼어난 겉모습으로 자신을 치장하면 목표 본래의 모습을 해치게 된다. 그 어떤 모습의 목표든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제 세상을 펼칠 것이다.

호수도 때론 저 먼 산을 지나 지평선으로 떠나가는 하늘에 눈물지었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의 기개를 질투했고, 제일 낮은 곳에서 하늘이 돌아오길 간절히 소원하며 계속해서 썩어감과 싸우는 자신을 원망했다. 목표를 향하는 과정에서 분명 지칠 때가 있을 것이다. 자신보다 목표에 근접해 있는 이들이 보일 수 있고, 자신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제 높이만을 자랑하며 차갑게 메말라 갈라진 산들은 하늘을 담을 수 없고, 하늘의 밤에는 잊혀져 보이지 않는다. 호수는 유유히 자신의 갈 길을 간다. 밤에도 끊임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그 어둠도 담아낸다. 결국 승리할 것이다. 작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 빠지지 않는다면, 잔잔한 호수가 목표를 이룰 것이다. 모두가 올곧은 호수가 되길 바란다.


김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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