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유진(국사 22)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무슨 옷을 입고 점심에 뭘 먹을지처럼 사소한 일부터 회사나 학교를 선택하는 복잡한 일까지 매 순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우리는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우리는 ‘결정장애’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제는 ‘결정을 못 하겠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결정장애 있어’라고 말하는 편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결정장애라는 진단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나만의 착각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자각하지 못했지만 내가 누리고 있는 권리와 특권이 누군가에겐 차별로 느껴질 수 있다. 마치 차별하지 않으려 노력하기에 차별하지 않는다고 믿지만, 차별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의도와 무관하지만, 일상적이고 당연한 조건으로 인해 차별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봤다. 시간 되면 학교 가서 수업 듣고,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자고. 이것도 특권이라고 봐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라면 특권은 드라마 속 재벌이나 고위층 사람들만이 누리는 전유물 같았다. 나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그러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도준이 내뱉었던 대사가 생각을 바꿔 주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아무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 이 순간 생계 대신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것도 든든한 부모의 경제적 심리적인 지원 덕분이라는 생각 안 해 봤어?

대를 이은 법조계 명문가인 너희 집안 건강한 몸, 좋은 머리. 그 모든 게 태어날 때부터 너에게 공짜로 주어진 특권이라는 생각 정말 단 한 번도 안 해본 거야? ”

일상적으로 누리는 특권이기에,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기에,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기에 눈치채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특권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오전 9시 수업을 들어도 자취하기 때문에 통학하는 학생들보다 30분 ~ 1시간 더 잘 수 있는 것, 막차 걱정 없이 놀 수 있는 것, 혼자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것. 생각해보면, 불과 몇 년 전 다니던 고등학교의 직행버스가 없어 매일 7시 10분에 집을 나가고, 친구들과 놀다가도 10시가 되면 막차를 타러 가야 했던 경험이 있음에도 현재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 아니기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차별이 무엇이고, 특권은 무엇인지 일일이 나열하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같은 행위라 하더라도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 권리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것이다. 차별하고 있음에도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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