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은 작품 속 찰나를 전달합니다. 책, 영화, 드라마 등 활자와 영상이 담아낸 장소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타 유기체의 체내외에 기생하며 명을 이어가는 생명체, ‘기생충’. 우연히 숙주를 만나면 살아남는 것이고, 아니라면 유랑하다 그대로 죽어버리는 기생충의 삶을 떠올려 본 적 있는가. 그들의 처절한 삶은 숙주에게 그저 거슬리는 이물질일 뿐이다. 박테리아나 곰팡이, 벌레 등 다양한 유기체가 기생충에 해당되지만, 영화 <기생충>은 지구상 가장 고등 생물인 인간이 기생충으로 전락해버린 현대 계급 사회의 불편함을 적나라하게 시사한다.

반지하에 사는 전원 백수 4인 가족. 그들은 윗집의 와이파이를 훔쳐 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이따금 소독차가 돌면 창문을 연다. 영화는 제목을 통해 기택네를 기생충에 비유한다. 

벌레의 번식을 막기 위한 소독차 연기가 본인에게도 해를 끼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기택’의 모습에서 이 가족의 운명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이미 정해진 듯하다. 우연히 친구 ‘민혁’의 과외 알바를 이어받은 아들 ‘기우’. 가짜 대학 졸업장을 들고 입성한 ‘동익’네의 고급 주택은 그에게 난생 처음 보는 신세계다. 기우는 동익의 집에 온 가족을 끌어들인다. 동익네가 여행을 떠난 날, 기택네는 냉장고의 음식을 마음껏 취하고 온 집안을 활보한다. 

하지만 폭우로 인해 동익네는 금세 돌아오고, 불을 켜면 어두운 곳으로 도망치는 바퀴벌레처럼 책상 아래 숨은 기택네는 모두가 잠이 들고 나서야 반지하로 귀가한다. 넘어질 듯 높은 언덕을 내려와 지상과 지하를 냉정하게 구분하는 계단을 타고 현실로 돌아온다. 그렇게 그들은 물에 흠뻑 잠겨 살지 못하게 된 자신들의 집을 가만히 바라본다. 

실제로 기택네가 뛰어내려오던 계단은 자하문터널과 지상의 도로를 가르는 벽면에 보잘것없이 붙어있다. 땅값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듯 듬성듬성 늘어진 고급 주택과 가게에서는 계단이 보이지 않는다. 높은 언덕을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고 오래된 빌라가 가득한 구역으로 들어서야만 기택네가 위태롭게 발을 딛던 계단이 보인다. 

그 기이한 길을 지나 초라한 모습의 계단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애써 외면하던 어떤 생각이 마음을 짓누른다. 영화에서 흐르는 긴박한 음악과 빗소리, 젖은 길을 차도 없이 뛰어가느라 쩍쩍 붙는 발소리가 만들어낸 하층민들의 블루스가 귓가에 울린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은 계단 아래일까, 위일까. 


신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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