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언론 ‘라 크루아,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 환자가 직접 약물을 투약해 스스로 죽음을 맞는 ‘조력사망’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네덜란드에서도 건강 문제를 앓고 있던 전 총리 드리스 판 아흐트와 부인 외제니 여사가 조력사망으로 삶을 마감하며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의가 전세계적으로 불거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법)의 사각지대를 파악하고 더 나아가 조력사망의 필요성이 대두된 배경을 살펴봤다.

시행된 지 8년째 연명의료중단, 논쟁 여전해

안락사로 번역되는 ‘euthanasia’는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죽음을 뜻한다. 환자의 의견에 따라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안락사는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의 단계에 들어선 중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약물 등을 사용해 생명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적극적 안락사’와 산소호흡기 등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6년 연명의료법의 시행으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이하 연명의료중단)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09년 대법원은 ‘이미 의식의 회복 가능성을 상실해 더 이상 인격체로서의 활동을 기대할 수 없는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신체 침해 행위에 해당하는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한다’고 선고한 바가 있다. 환자가 회복 가능성을 상실했을 때 연명의료를 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박은호 신부는 “안락사가 누군가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앞당기는 행위에 해당하면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지금 우리나라는 범죄자의 경우에도 생명이라는 가치를 존중해주는 상황”이라며 “그만큼 생명은 종교적인 관점을 넘어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기에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어야 한다”고 전했다. 연명의료중단이 생명 경시 풍조를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연명의료법, 환자의 자기 결정권은 존중되고 있는가

현재 연명의료법은 어떻게 시행되고 있을까. 연명의료중단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된다. 연명의료법 제2조 제1호에서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를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로 규정하고 있다. 환자는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미리 밝힐 수 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연명의료 여부를 계획하는 문서다. 환자가 담당 의사에게 작성을 요청하면 의사의 설명 및 확인을 거쳐 환자의 결정을 문서화해 임종 과정 시 연명의료중단이 이뤄지도록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전국 등록기관에서 작성 가능하다. 실제로 연명의료법 시행 이후 연명의료중단을 선택하는 환자가 증가했다. 지난 2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발표한 「월별 연명의료계획서 등록 추계」에 따르면 2월 기준으로 누적 133,413명이 연명의료계획서를 등록했다. 동월 「월별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이행서 통보 현황」에 따르면 누적 339,857명이 연명의료중단결정을 이행했다. 

하지만 사전에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더라도 최종적인 판단은 의사가 내린다는 점에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동신대학교 임종희 교수는 지난 2019년 발표한 「연명의료결정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서 “의료진에게 연명의료중단결정을 맡기면 재량권을 남용하거나 범죄에 악용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환자의 생명권이 의사에 의해 침해되거나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무시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22년 8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시행 5주년 연명의료결정제도,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유신혜 교수는 현행 연명의료법이 △가족이 대신 결정해 줄 수 없는 환자의 이익 보장 불가 △연명의료중단결정 이행 과정 복잡 △환자·가족 돌봄 지원 부재로 인한 비뚤어진 연명의료중단결정 유발 등 한계를 가진다고 지적했다. 

조력사망 합법화, 팽팽한 의견 대립 지속

최근 연명의료중단을 넘어 조력사망 합법화가 논의되고 있다. 조력사망이란 의사로부터 약을 처방받아 환자가 직접 약을 투여해 사망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지난 2022년 6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임종과정에 있지 않은 환자라고 하더라도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는 경우 본인의 의사로 자신의 삶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며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연명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현재 조력사망을 허용한 국가마다 조력사망이 허용되는 기준은 다르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사망이 임박한 말기환자를 조력사망의 대상자로 지정하고 있다. 2022년 5월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이 19세 이상 일반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성인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태도」 결과에 따르면 76%가 조력사망의 입법화를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남은 삶의 무의미’가 31%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26%) △고통의 경감(21%)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조력사망이 합법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내 환자들 중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국가로 출국해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외국인의 조력사망을 돕는 스위스 안락사 단체에 가입해 조력사망을 선택하기도 한다. 

지난해 4월 기준 스위스 안락사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 회원의 수는 ‘디그니타스’ 136명, ‘엑시트인터내셔널’ 55명, ‘라이프서클’ 13명으로 총 204명이었다. 조력사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A(25) 씨는 “인간의 자기 결정권이 어떤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법적으로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조력사망을 원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반면 의료계와 종교계는 조력사망 입법화에 반대하고 있다. 조력사망이 자살을 부추기거나 고령사회에 여러 부작용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조력사망을 법제화했을 때 자살률이 증가한 경우도 많았다. 지난 2022년 8월 안 의원이 ‘의사조력자살, 말기 환자의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조력사망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서울대학교 김현섭 교수는 “2022년 발표된 미국의 Girma & Paton의 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 여러 주에서 조력사망의 합법화 이후 자살률이 약 18% 증가했으며 특히 64세 이상의 여성에서 많이 발생했다”고 발언했다. 

지난 2015년 캐나다는 18살 이상의 회복 불가능한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조력사망을 허용했다. 그 결과 2019년부터 매해 전년대비 31%씩 전체 인구의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었다. 더불어 2022년 연방 보건부가 발표한 조력사망을 통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환자 수를 알려주는 캐나다 「MAID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조력사망을 택한 환자는 1만 3241명으로, 전체 사망자 수의 4.1%를 차지했다. 

성신여자대학교 김율리 교수는 「의사조력자살을 둘러싼 윤리적 쟁점: ‘조력존엄사’ 개정안을 중심으로」에서 “조력사망 합법화 국가에서 법 개정을 통해 허용 대상에 포함된 고령자, 정신질환자 역시 환자인 동시에 돌봄이 필요한 약자”라며 “이러한 대상들에 대해 현재 의학 수준에서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고 본인도 죽음을 원한다는 이유로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것은 단지 개인의 죽음의 권리 보장이라는 말로만 포장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은 압도적으로 노인 자살률이 높은 국가”라며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삶을 끊게 만드는 것이 진정으로 자기 삶과 죽음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역설했다. 

웰다잉(Well-Dying)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연명의료법은 두 차례의 개정을 거쳐 시행돼 왔지만 환자들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와 더불어 조력사망에 대한 합법화 논의도 계속되고 있으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백경희 교수는 조력사망의 합법화 논의가 진행되기 전, 연명의료법의 완전한 정착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연명의료법상의 연명의료중단과 관련된 제반 절차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환자와 의료진 모두 정확히 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법상의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연명의료중단 제도가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체계 마련과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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