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산악부 재학생 6인, 졸업생 1인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모두 8명이 도봉산에 있는 선인봉을 다녀왔다. 선인봉은 도봉산에는 대표적 암벽 대상지이다. 높이가 약 200m, 둘레가 약 500m정도이며, 바위표면이 날카롭게 살아있어 아름답기로는 북한산의 인수봉 뺨치는, 신의 예술(?)에 가까운 화강암 봉우리다.

이 선인봉을 오르는 데는 약 40여 개의 다양한 난이도의 코스가 있다. 그 가운데 박쥐길은 특이한 곳으로 록크라이밍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선인봉의 대표적 코스이다. 선인봉에서 등산객이 떨어졌다하면 박쥐길 코스였고, 하루에도 추락사고가 몇 차례씩 있곤 했다. 떨어지는 곳도 대부분 박쥐의 날개모양을 한 제2피치(실제로 박쥐날개라고 함)였는데, 추락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등반 난이도로 인한 문제보다는 심리적인 이유가 더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30년만에 오르는 박쥐길
심리적 부담의 원인이라면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등반 시 가파른 절벽에 매달려 있는 것 처럼, 긴 날개 끝을 뜯는 자세로 매달려 돌아 올라가야 하는 부담이다.
이와 더불어, 바위 표면에 많은 박쥐 배설물과 죽어 떨어진 박쥐시체가 즐비하게 걸려있어 이것들을 걷어내면서 가야했던 불쾌감(+공포감)도 있다. 마지막 하나는 실제로 많은 박쥐가 시끄럽게 찍찍대며 살고 있는 박쥐굴에 손을 넣고 올라가야만 하기 때문에 박쥐에 대한 공포감이 추락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이러한 우려와 30년 만에 박쥐를 가까이서 만날 기대감으로 제1피치를 끝내며 유심히 위로 길게 찢어져 있는 박쥐날개 밑 굴속을 올려다보니 아무런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박쥐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30년 전 공포감과 함께 오만 인상을 다 찡그리며 올라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 순간을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고민했다.

심난한 가운데 우리는 정상에 올라 바위턱에 걸터앉아 멀리 내려다보이는 아래 세상을 응시하면서 주먹밥 한 개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저 아래 세상은 탄핵정국, 총선정국, 경제침체, 사교육, 청년실업, 이공계 기피, 보수와 진보전쟁, 부정부패, 살인, 자살, 도피, 체포, 테러, 이라크전쟁, 매스컴 전쟁 등등에 찌들고 엉켜 피투성이 모습을 하고 있다. 토종 야생여우가 사라졌듯이 박쥐길에는 박쥐가 없다.

박쥐 없는 박쥐길에서 세상을 생각하다
내가 산행을 시작한 것은 내가 우리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한순간에 지나가 버렸다. 하산길의 발걸음은 무거워졌지만 학생들과의 하산주를 한 잔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학생들과의 대화는 산보다 더 신선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열심히 바위를 올랐고, 또 30년은 열심히 살았잖아!” 중얼대며 차에 올랐다. “젊음은 좋은 것이여...., 다음주에는 열심히 살고, 일요일에는 인수봉이나 가야겠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