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시립대신문을 항상 챙겨보는 편이다. 2주마다 한 번씩 신문이 나오는 날이면 강의 중의 쉬는 시간이나 점심을 먹고 나서 휴식 시간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다. 신문을 통해서 이런 저런 학내 소식을 접하게 되는 것은 물론, 사회의 시사적인 면이나 문화에 대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 수 있다.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면서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내가 서울시립대신문을 즐겨 보는 이유 중에 하나다.

그러나 서울시립대신문의 기사 가운데,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없는 기사가 있다. 바로 학술면의 기사가 그것이다. 학술면을 읽을 때면 오히려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에게 너무 난해한 수준의 내용을 다루는 탓에 이제 학술면은 아예 보지도 않고 그냥 넘겨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비단 나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나와 비슷한 지식 수준을 갖는 대학생들에게 이것은 공통적인 문제다.

물론 말 그대로 ‘학술’면이기 때문에 대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학문적인 지식을 다루는 것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다루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도, 조금은 어려운 분야도 접해보아야 발전할 수 있다는 말도 모두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구구단을 외우고 있는 초등학생에게 인수분해를 가르친다면 과연 효과적일까. 인수분해를 가르치면서 어렵게 공부해야 실력 향상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에 대한 답은, “너무 어려워서 아예 기사가 읽혀지지가 않는다”는 내 친구의 말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고 이해의 소지가 있을 때, 배우려는 의욕도 생기고 자기 발전도 가능할 것이다.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면, 우리는 무관심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다.

학술면의 기사가 대부분 그 분야의 전문가나 교수에게 청탁을 해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문가에 의해서 쓰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내용이 난해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시립대 신문의 독자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대학생이다. 필요 없이 너무 어려운 내용보다는 대학생의 눈높이에 맞는 기사를 다루어주었으면 한다.

우리학교 학생들이 서울시립대 신문을 많이 찾고, 학생들에게 흥미롭고 유익한 신문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신문사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시립대 신문이 비가 오는 날 우산 대용으로 쓰이느냐, 학생들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되느냐의 문제는 신문사에 달려 있다. 앞으로 기사를 싣는 데 있어 신중함을 더 기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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