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3일에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의 남측위원회가 출범했다. 남측의 역사학자들은 지난 3년 동안 여름과 겨울에 평양을 방문하여 북측과 수차례의 학술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남북의 역사학자들은 상호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이끌어갈 공동의 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협의회이다. 협의회는 남북을 오가며 정기적으로 학술발표회와 자료조사 등을 실시할 예정이다. 그밖에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등도 남북간의 역사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초,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초청으로 북한의 역사학자 10여 명이 서울에 왔다. ‘근·현대 항일민족운동의 역사적 경험과 일본의 우경화’라는 주제의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모처럼 기대를 모았던 학술회의는 ‘북한측이 준비한 논문 대부분이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 등 북한의 체제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이유로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발표 논문의 수도 대폭 줄었다. 방한 인사 중에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송동원(조선사회과학원 혁명력사연구소장) 선생이었다. 그는 이번에 ‘일본의 가속화되는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정책이 조선반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작년 8월, 평양의 보통강호텔에서 열린 남측 역사학자들의 환송만찬 때 내 옆에 앉았던 사람이 바로 송동원 선생이었다. 그는 나에게 백두산, 정일봉 밑의 밀영, 삼지연 등을 돌아본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곳에는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투쟁을 기리는 거대한 조형물이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하여 산재해 있었다.

나는 무심코 ‘춥고 설사를 많이 해서 고생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우리 일행은 세찬 비바람 속에 떨면서 강행군을 한데다가, 어떤 음식에서 탈이 난지 모르지만 거의 전원이 지독한 설사에 시달렸다. 그는 못마땅한 듯이 ‘조금도 감동하지 않은 것 같군요’라고 말했다. 나는 궁금한 김에, “유적지의 간판에는 김정일위원장이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써 있었습니다.

외국의 문건에는 그렇지 않다는 기록도 있는데 어느 것이 사실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남의 집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을 믿을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맞받았다. 우문(愚問)에 대한 현답(賢答)이었다. 그는 “남측의 역사교과서에 김일성수령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내용이 실렸다지요?”라고 물었다. 나는 “예, 보천보전투에 대한 기술이 1쪽 정도나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오늘 아침 보도에 따르면, 앞으로 북측의 삼지연을 통해 백두산을 오르는 관광코스가 열릴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남북의 사람들은 나와 송동원 선생처럼 이런저런 역사대화를 나눌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역사관을 이해하고 진실에 한발 더 접근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거창한 이름의 학술대회보다도 민초의 역사대화가 확산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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