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 같이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을 느끼기 위해
찾는 연주장은 더 이상 현대 예술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각각의 예술 간에 가지고 있던 담장은 허물어지고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파주, 임진강이 흐르고, 겨울바람이 매서운 땅. 이곳에 예술인 300여명이 모여 만든 예술 마을이 있다. ‘헤이리’ 예술 마을이 그것이다.

마을이 생겨나게 된 것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고 문화와 일상이 소통하는 공간을 희망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문화적 공동체를 만들었다. 전래 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이름을 따온 만큼이나 자연과 하나 된 예술 공간들이 눈에 띈다.

산을 가리거나 노을을 가리지 않도록 3층 이상의 건물은 짓지 않는 것, 건물의 물성이 그대로 드러나기 위해 안팎의 재료가 동일해야 한다는 것, 원래 있는 땅의 원형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 난 길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 등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헤이리는 예술인촌답게 건축물 주변에 있는 들판과 자갈밭, 갈대밭, 그리고 텃밭을 공연·전시 장소의 연장으로 쓰고 있다. ‘헤이리 커뮤니티하우스 사무국’의 기획팀 엄기숙씨는 “이곳 헤이리에서는 창작 활동뿐만 아니라 전시, 관람, 상업 활동이 동시에 이뤄진다. 이것이 헤이리가 대부분의 예술촌이 폐쇄적인 순수 작업공간이라는 점과 구분되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헤이리는 최근 가장 주목되는 현대예술의 경향인 ‘크로스 오버(cross over)’를 제일 효과적으로 실현해 놓은 곳이기도 하다. 즉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결합하여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운 창작물들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전과 같이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을 느끼기 위해 찾는 연주장은 더 이상 현대 예술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각각의 예술 간에 가지고 있던 담장은 허물어지고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그간 어느 예술 장르든지 그것이 지니고 있는 특성 그대로 담은 1차적 예술 활동을 예술의 형태라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현대 예술은 이러한 단편적인 예술 활동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대예술 중 연극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무대 위에서는 무용가가 동작을 통해 연기를 하고, 무대는 설치 예술가가, 음향은 오케스트라가 담당한다. 그리고 배경에는 미디어 예술가들이 영상물을 상영함으로써 다원적인 예술 활동을 살려낸다. 현대 예술의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헤이리인 것이다.

사회가 분업화, 산업화 되면서 예술의 형태도 날로 다양해지고 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소비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헤이리도 이에 응해 예술의 새로운 소비행태를 제시한다. 엄기숙씨는 “헤이리는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현상에 발맞추어 예술의 새로운 소비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공동연합의 다원적 예술형태인 공연기획을 소비자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연기획을 앞으로 다양하게 실현할 계획이다”라고 말한다.

그대로 살리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창조적으로 생산하며, 이에 그치지 않고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순환적 관계를 만들어 내고자했던 헤이리의 예술인들. 그들은 자본과 상업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자신의 혼이 닮긴 작품들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한시한초에도 무수한 변화가 있는 이 세상에서, 어쩌면 이들은 외부변화의 한계를 뛰어 넘은 열린 공간 속에서 공동체적이고, 다원적인 문화를 우리에게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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