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조(紅潮)를 띠며 웃는 산은 설악(雪岳)이라네.

바다만 보고 오기에는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설악산이 수학여행의 단골 코스이기는 하지만 필자가 가본 설악산은 언제 가봐도 새롭고 좋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겨울과 봄에 와본 적은 있지만 가을에 와보기는 처음이었다. 봄에 본 설악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겨울 설악의 모습은 한편의 동양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슬 산책하는 기분으로 산을 탐한다면 좋을 듯 싶다. 전문 등반가가 아닌 이상 괜시리 대청봉을 넘어 백담사로 가는 등산로를 상상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러한 방법이 설악산의 진경을 볼 수 있는 방법이라면 방법이지겠지만 일반인에게는 힘든 방법일 터이다.

그렇다면 어슬렁거리며 설악산이 내뿜는 홍조에 듬뿍 취해보는 것도 괜찮다. 예전에 한번은 비선대까지 오른 경험이 있고, 한번은 울산바위까지 오른 경험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리 멀지 않는 비룡폭포를 다녀올 작정이었다. 비룡폭포까지의 거리는 슬슬 걸어올라도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가을 햇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늘 속으로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손까지 싸늘해진다.

비룡폭포에 다다르면 서늘한 기운부터 느낄 수 있다. 폭포의 물줄기가 흩어지는지 습한 기운도 느껴진다. 비룡폭포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거세고, 소리는 가을하늘처럼 쾌청하다. 물은 수정처럼 맑고, 손을 물에 넣으니 칼에 베인 듯 아리다.

내려오는 길은 더 천천히 발을 옮기는 것이 좋다. 단풍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저 멀리 풍경들을 보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일 터이니. 나뭇잎들은 햇볕에 그리고 서늘한 기운으로 말미암아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한시가 다르게 해 끝에 매달린 나뭇잎들은 제 빛깔을 바꾼다.

잠깐 눈 먼 곳에 두었다 거두어서 나뭇잎들을 보면, 나뭇잎들은 붉은 색으로 몸단장하고 산들거리는 바람에 농익은 몸짓을 실어 나를 유혹한다. 그러면 아! 탄식이 절로 나온다. 난 그만 단풍의 품안에 못이긴 척 몸을 맡긴다. 설악은 칼날처럼 곧추선 바위들의 웅장함보다는 다소곳한 색시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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