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제간 연구의 현주소

인류 역사에서 학문이 오늘날처럼 다양한 분과학문들로 나뉘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근세 이전만 하더라도 학문은 크게 철학, 법학, 의학, 신학, 수학 정도로 나뉘어 있었고, 철학 안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개별학문들 물리학·생물학·천문학 등이 논리학·윤리학·형이상학과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세를 지나면서 새로운 방법론과 특성을 지닌 과학이 철학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새로운 학문영역으로 등장하면서, 학문의 분화는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분화는 자연·사회·인간에 대한 탐구가 발전할수록, 주제의 다양성과 내용의 심화로 이어졌다. 거시적인 영역에서 미시적인 영역으로 탐구영역의 확산, 부분에 대한 분석적 고찰을 통해 전체를 파악하는 환원적인 분석방법론의 강화, 그리고 정교한 실험기술의 발전 등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실제로 이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포함하여 학문 전반의 급속한 성장을 이루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는 한편으로 학문의 총체적인 발전의 측면에서 볼 때 몇몇 부정적인 결과들을 야기하였다. 우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나치게 세분화·전문화되면서 인접 학문분야들 간에는 물론, 동일 학문분야 안에서조차 세부전공이 서로 달라 상대방의 학문적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는 학문간 또는 전공간 의사소통의 단절이라는 문제를 낳는다.

작게는 동일 분야의 경우 분화된 세부전공들 사이의 연계성이 약해짐으로써, 그들 사이의 유용한 정보교류나 협동연구(cowork) 나아가 동일분야 안에서의 학문적 정체성이 점점 약해지는 문제를 낳고 있고, 크게는 다른 학문분야의 경우 상호간 이해의 부족과 대화 결핍, 심지어 과학문화와 인문문화라는 이질적인 ‘두 문화’를 생성하고 고착화하는 문제들을 낳고 있다.

다음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통합적인 협동연구방식이 아니면 분석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탐구영역들에 대한 학문 발전의 미성숙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뇌를 닮은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는 뇌의학, 컴퓨터 제어 및 하드웨어 공학, 심리학, 언어학 등의 분야들이 함께 참여하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은 복합학문분야이다.

기존의 세분화된 분야들의 파편화된 지식만으로는 이에 대한 연구가 어렵다. 기존 학문체계의 이 같은 문제점은 곧바로 개별학문분야를 넘어서는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과 배경이 된다. 또한 학제간 연구가 나갈 방향을 암시한다. 오늘날 학제간 연구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나의 주제를 놓고 다양한 학문 분야들이 함께 연구하는 공동연구나 협동연구와 같은 매우 흔한 기본적인 형태에서, 흔치 않지만 아예 이러한 연구자체를 제도화하여 대학원의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형태도 있다.

후자의 경우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과학기술에 대한 역사적·철학적·사회학적·문화적 분석을 통해 과학문화와 인문문화의 대화를 모색하는 과학학 협동과정들, 공학기술에 대한 산업경제적·정책적·경영학적 분석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기술학 협동과정들, 인간 뇌에 관한 기초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인지과학 협동과정, 의료 행위를 대상으로 의료법과 생명윤리의 간극을 메꾸려는 의료 법-윤리 협동과정, 의과학 협동과정 등등 다수의 프로그램들이 대학원 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의 성과는 그 짧은 역사로 인해 아직은 미미하지만, 몇몇 경우에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과학학 협동과정의 경우 과학과 인문사회과학 간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 그동안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왔던 과학기술문화와 인문문화 사이의 간극을 상당히 좁히고 상호간의 필요성을 확인시켰고, 인지과학의 경우처럼 개별 분과학문만으로 그 접근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새로운 복합학문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 또한 적지 않다. 대다수 협동과정의 운영 및 지원이 제도적으로 불안정하다.

대학원 프로그램은 분과화된 개별 학문들을 통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창구이지만, 학부를 두고 있지 않기에 독립적인 예산편성이 어렵고 운영이 매우 불안정하다. 한편 학제간 연구분야가 공식적인 학문분류표 상에 올라가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는 학제적 연구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대학사회의 인식이 여전히 낮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학제적 연구분야는 단순히 몇몇 분과학문들의 기계적 종합이 아니며,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내용 및 방법론 그리고 가치를 창출하는 메타적인 연구라는 인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