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ecology)이라는 용어는 그리스 어의 oikos와 logo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여기서 oikos는 가정(家 庭)이나 가사(家事)를 의미하고,logos 는 학문을 뜻한다.

즉 생태학 은 자연의 가정을 연구하는(생태계 의 각 수준에서 생물들간의 상호관 계와 생물-환경의 상호작용을 다 룸) 생물학의 한 분야를 지칭하는 말로 처음 등장했다. 그러던 것이20 세기 후반 인문학자들이 환경 문 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지금은 생태주의 또는 생태론 등의 용어와 커다란 구분 없이 쓰이고 있다.

생태학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후 반 들어 커다란 문제로 대두된 전 지구적인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에서 비롯됐다. 사람들은 19세기 말 슈펭글러가 예견한 서구의 몰락 이 바로 목전에 닥친 것처럼 생각 되어 시급히 그 대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인식과 대책 마 련에 이론적인 발판을 마련한 것이 생태주의 또는 생태론이다.

노르웨이 철학자 아느 네스로 대 표되는 심층 생태론은, 단순한 오 염과 자원고갈에 반대하는`피상적 생태론`을 넘어서는 생태 철학적 원리를 내세운다. 네스는, 지구 환 경문제가 근대 이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잘못된 태도에서 유래한다 고 보고 인간의 의식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층 생 태론에 의하면, 생명체나 인간은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되고 전체적으로 엮어져 있으 며, 모든 피조물들은 신 앞에서 평 등하다. 그리하여 이 이론은`다양 성과 공생의 원리`, `무계급의 다 양성`, `지방의 자율과 탈중심화` 등을 지지한다.

국내에서는`한살 림 운동`이 여기에 속하며, 김지하 의 율려 사상도 이와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다. 한편 생태 사회주의 또는 생태 마르크스주의라고도 불리는 사회 생태론은 심층 생태론이 개개인의 양심에만 호소할 뿐 정치적 비판에 소홀하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등장 했다.

그 대표주자인 머레이 북친 은 생태문제를 사회적 차원의 문제 로 파악하고,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조가 근본적 으로 시정되지 않는 한 생태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 서 이 이론은 지배와 위계질서를 생산하는 인간 사회의 도덕적 변화 와 제도 변화가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들 두 생태론은 각각 그 문제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가령 심층 생태론의 경우, 그것이 보수주의적 성향과 맞물려 환경위기의 사회구 조적 원인들을 희석시키는데 기여 하거나 전망 없는 유토피아만을 내 세운다고 지적된다.

이에 반해 사 회 생태론에 대해서는 그것이 여전 히 인간중심주의적인 발상을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 다. 이와 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둘을 발전적으로 통합시켜야 함에 의견 을 같이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 상에서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와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생 태 신학은 기독교가 이제 환경적 죄악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고 하면서 인간이 지구에 대한 정 의 회복의 책임을 가져야 함을 역 설한다. 또 에코페미니즘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착취가 전통적으로 자 연과 동일화되어온 여성에 대한 착 취와 함께 맞물려져 왔다고 지적하 고 남성 가부장적 제도의 타파를 주장한다.

이밖에, 생태주의에 입각 한 운동의 일환으로 환경 친화적인 에코하우스나 생태관광에 대한 관 심이 고조되고 있으며, 국내 환경 운동단체인 녹색연합은 1991년 창 립한 이래로 갯벌보존운동, 핵발전 소반대운동, 생명복제반대활동, 도 심생태계회복운동 등을 지속적으로 전개해나가고 있다.

얼마 전 국내 에 번역 소개된『가비오타스』라는 책 역시 콜롬비아의 한 생태공동체 에 대한 취재기록을 통해 최근 생 태주의에 관한 활발한 관심을 반영 하고 있다.

올 봄에는 황사(黃沙)가 그 어느 해보다 심하게 한국을 덮쳐버렸다. 중국의 지속적인 사막화가 그 원인 인데, 과도한 관개나 산림벌채, 환 경오염 등이 그러한 사막화를 촉진 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살 포하여 지구를 앓게 한 병균이 마 침내 우리의 피부 위로 상륙한 것 이다.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다. 마스크를 둘러쓰고 가던 길을 계속 갈 것이냐, 가던 길 멈추고 내가 흘리고 다닌 노폐물을 수습할 것이 냐. 생(生)과 사(死)의 선택이 그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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