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_파일/ 스티븐 호킹,「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까치, 1998

지식에 대한 열망은 곧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유한한 세계 안에서 추구할 수 있는 지적 새로움이란 극히 제한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확대해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유한한 세계는 무한으로 뻗어 있고, 이 무한으로 뻗어 있는 세계를 우리의 인식 체계 내에서 수용한다면, 새로움의 추구는 무한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티븐 호킹의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까치, 1998)는 우리에게 바로 이 세계가 무한한 세계로 뻗어 있음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이 무한 세계를 통찰하는 지적 새로움을 우리가 맛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은 모두 1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내용은 이 책의 중심 내용, 즉 ‘우주의 기원과 운명’을 논하는 것에 할애된다. ‘우주의 기원과 운명’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이 책은 우주를 논하는 과학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설명한다(1장). 그것은 고대 인도의 우주관(거대한 거북등 위로 여러 코끼리가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에서부터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에 이르는 근대 물리학 이론을 거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등에 이르는 현대 물리학 이론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들 이론들을 통해 검증된 여러 사실, 즉 절대적 시간관은 상대적인 시간관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점(2장),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것(3장), 불확정성의 원리를 통해 과학의 결정론에 관한 회의가 생겨났다는 것(4장), 양성자와 중성자는 실제로 그보다 더 작은 ‘쿼크’와 ‘반쿼크’들로 구성된다는 점(5장)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내용(6-9장)은 스티븐 호킹이 선사하는 최근의 블랙홀 이론에 관한 것이다. 블랙홀이란, 그 이름이 시사하는 바처럼, 중력이 강하여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들이는 검은 혹성을 의미한다.

“물질의 밀도가 장소에 따라서 미세한 차이를 나타내는 팽창하는 우주에서, 중력은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은 일부 영역의 팽창을 늦추고 수축”(p.180)해 들어가기 마련인데, 블랙홀은 이 힘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다.

블랙홀 이론이 현대 물리학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우주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 때문이다. 수축해 들어간 우주는 자신의 과도한 중력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빅뱅’, 즉 우주의 기원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스티븐 호킹의 주장에 의하면, 기존에 알려진 사실과는 달리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 블랙홀은 자신의 거대한 중력으로 주변의 에너지를 끌어당길 수밖에 없는데,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 끌어당겨진 에너지의 일부는 복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복사되는 에너지는 입자-반입자 가운데 반입자(가상입자)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일정 정도의 질량을 가지고 있는 입자의 경우 블랙홀의 강한 중력에 의해 방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우주 안에는 가상입자들의 공간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상입자와 반입자의 쌍은 ‘빈’ 공간에도 무한한 에너지 밀도를 부여하고, 그 공간을 무한히 작은 크기로 휘게 만”(p.213)들 것이다. 시공이 휘어져 있는 우주 공간에서 어떤 특정한 공간과 그 반대편의 공간을 연결하는 지름길로서의 ‘벌레구멍’이 존재한다면 시공을 초월하는 시간여행은 가능해질지 모른다(10장).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시간여행의 가능성 여부와 함께 우주의 기원과 운명을 기술하는 데에는 아직까지도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티븐 호킹이 제한하는 하나의 방법은 현대 물리학의 통일을 꾀하는 것이다(11장).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통일을 가져올 수 있는 물리학의 통일은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풀리지 않은 우주의 기원과 운명에 관한 해법의 유일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호킹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현대 물리학의 세계는 아직도 많은 미해결 과제를 남기고 있는 미로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오늘날 현대 물리학의 가치를 낮게 평가할 이유는 없다. 무한의 세계로 뻗어 있는 인간의 지적 열망이 계속해서 현대 물리학의 발전을 도모할 것이며 그때마다 우리는 그 새로움의 세계에 몰입하여 희열을 맛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