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승의 뿌리, ‘고전’에 대해 살펴본다.

고전은 단순히 오래 전에 씌어진 글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옛 글 중에서도 현재까지 그 생명력과 가치가 그대로 유지되어 오늘 날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삶의 지혜와 감동을 주는 글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물론 학문에 뜻을 둔 사람들조차 고전을 단순히 낡은 옛 기록물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경우를 자주 목도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까지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즉, 책의 홍수 시대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많은 책들이 시중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시류를 좇아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또한 여기에는 출판계의 상업주의와 현대는 정보화 사회라는 인식이 한몫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전이 설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이 없다는 근거 없는 발언도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근대화가 외세에 의해 급격하게 이루어져 전통과 단절된 까닭에 이루어진 잘못된 인식의 소치라 할 만하다.

서양의 경우도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그나마 조금 낫다고 말해진다. 가령 셰익스피어나 희랍의 비극은 서양에서 여전히 많이 읽히고 특히 많이 연구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비극은 전통적인 극 장르의 모든 기교적 에센스를 담고 있다고 평가되며 뿐만 아니라 그의 뛰어난 언어 조탁 솜씨에 대해서도 많은 이론가들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옛 희랍의 비극에 대해서도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인간성의 원형들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끊임없이 읽히고 연구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서양 고전에 대해서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와 관련, 서울대에서는 ‘오늘날에도 고대희랍과 로마의 문화적 유산은 단순한 과거의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서양 문화의 흐름에 기본적인 성격을 규정해준 항시적인 전범(典範)의 틀’이라는 인식 하에 1991년부터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을 개설해 연구와 인재배출에 전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역시 우리의 고전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기반으로 우리의 문학, 우리의 사상을 검토하는 일이다. 상술했듯이, 우리나라는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전통과의 극심한 단절을 경험하였고 그러한 결과로 우리의 값진 고전들이 도서관이나 박물관 등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파묻혀 있다.

따라서 그러한 묻혀진 고전들을 발굴해내는 작업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문학성 및 사상성을 규명하고 이것을 다시금 고전문학사와 사상사에 편입시켜 그 가치를 확인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할 때 우리의 고전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풍부해지고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고전에 대한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고전 교육은 고전 읽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나 고리타분한 이야기쯤으로 여겨지던 고전을 읽게 함으로써 그에 대한 진가를 확인케 하는 일은 앞으로 우리의 고전이 활발히 연구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글에서 이상보 국민대 교수는 춘향전이 서구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세계적 고전임을 지적하면서, 춘향에 대해 “세계 여성의 구원한 이상형으로 군림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세계적인 수준을 지니는 우리의 고전은 이밖에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김만중이 쓴 서포만필은 송강 가사에 대한 비평과 함께 국문 문학론의 당위성을 주장한 글로 조선조 비평 문학의 전형이 된 작품이다.

여기서 김만중이 문학을 철학적인 ‘뜻’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그 나라의 ‘말’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밝힌 것은 선구적이라 할 만하다. 한편 작년에 탄생 500주년을 맞이한 남명 조식은 성리학자이면서도 편협하게 유가 이념만 고집하지 않고 열린 눈으로 다양한 학문을 섭렵한 대학자로서 그의 저작인 『남명집』은 이러한 그의 사상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우리의 고전을 널리 보급하는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한자로 된 글에 대한 정확한 번역 작업이 수행되어야 하며 한글로 씌어진 글 역시 좀더 부드러운 현대어로 옮겨 적는 일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우리 고전은 국내는 물론 국외에까지 그 진가가 인정되어 세계고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