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_파일/ 이규목, 「한국의 도시경관」 (열화당, 2002)

다분히 자조적인 위 물음은 늘 내게서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본교의 이규목 교수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도 “없다”이다. 온고창신(溫故創新)이란 말로 해답을 내 놓았으니 한국의 도시경관은 아직 없다는 말이거나 추하거나 조잡하다거나 천하다는 말이다.

조경학자가 아닌 환경학자인 내게 한국의 도시는 추하거나 조잡하다거나 천하다는 말로 대표되어 있다. 청계천 위에 세워진 고가도로나 상가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규목 교수는 책 머리에서 청학동, 무릉도원을 찾아 나선다. 또한 정감록, 미륵정토사상, 몽유도원도, 이어도, 율도국, 무인공도라는 말에서 한국적 유토피아를 찾아나선다. 허균, 박지원의 고전에서는 한국적 유토피아가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설정되어 있다. 모두가 평등하고, 그 속에서 밭을 갈고, 물고기를 잡고, 등잔 밑에서 시를 읽던가, 시를 쓰는 행복이 이상적인 도시 경관을 찾아가는 조경학자에게도 관심사가 될 줄이야.

이내 그는 조선후기 서울의 도시 경관을 찾아 나선다. 정도전에 의해 원시적 의미의 도시 계획이 이루어진 조선의 수도, 한양을 찾아 나서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남대문에서 경복궁까지의 길, 경복궁 앞의 정부 건물, 종로의 상가, 지붕이 낮은 초가가 거의 전부였던 한양이 조선조 후기에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되고, 독립문(1897), 명동성당(1898), 정동교회(1898)가 들어선다.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차가 개통되고(1899), 종로에 가로들이 등장했으며(1900), 일본인들이 충무로에 그들의 동네를 이룬다. 도시가 혼돈을 겪을 때, 실학파·개혁파 이채연이 한양의 시장이 되면서 한양의 도시 개혁(1896~1898)이 비로소 시작된다. 이규목 교수는 “한성부 개조사업”에 주목한다. 덕수궁을 중심으로 방사선 도로와 환상도로와 외접도로가 있었다는 이태진의 인용문이 그를 사로잡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가 그의 시장 재임기에 많이 달라졌다는 비숍의 견문록이 또한 그를 사로잡고 있는 듯 하다.

그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 조선의 아름다운 도시 경관이 파괴되었으며 “이채연의 싹”이 경제 수탈용의 도시로 타락했다고 한탄한다. 또한 이때 성곽이 파괴되고, 조선의 전통이라곤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탄한다. 경주, 전주도 마찬가지고, 부여도 마찬가지다.

이는 신궁이 건설되고, 내선일체가 부르짖어졌고, 대동아 전쟁을 위해 약탈되었던 일제 식민지 시대의 산물이다. 그리고 해방 후 국적 불명의 도시가 생겨났다. 건축이라 할 수 있는 학문이 있었는지, 도시 계획이라고 하는 학문이 있었는지 그는 의아해 하고 있다. 필자도 이에 동감한다.

「한국의 도시경관」에서 괄목할만한 내용은 한국 도시경관을 위한 그의 제안이다. 그의 제안은 한 마디로 온고창신이다. 우리의 옛 것을 취하면서 새로움을 찾는다는 뜻이다. 올림픽, 월드컵을 찾아오는 외국인들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들의 도시미학을 만들자는 그의 뜻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도시 경관을 생각해 왔으니까. 이 나라에 살아 숨쉬고 있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위한 미학의 도시가 있어야 한다.

온고창신이라는 그의 말 속에는 환경친화적인 도시가 아닌 자연친화적인 도시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자연의 조건을 거역하거나 배반하지 않는 도시가 있어야 한다. 라틴어 어원을 보면 ‘경제’나 ‘생태’라는 말의 의미는 분리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자연과 경제는 공존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공존이 참으로 어려운 공존이니 어떻게 공존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겠는가? 이 나라 자연은 3천만 인구 이상을 수용하기 어렵다. 4800만 인구의 끝없는 욕심도 수용하기 어렵다. 도시의 아름다움도 공간의 여유 있음에서 가능할 것이다.

도시의 경관이 미학적이어야 “경관”으로 살아나는데 미학이라는 것도 天·地·人의 평화롭고 조화로운 공존에서 가능할 것이다. 결국 자연 친화적인(환경친화적) 도시 계획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 계획이라는 것이 정권과 돈에 의해서 자유라는 미명 아래 일그러져 있다. 그래서 도시의 아름다움은 없고, 오히려 그 자리에 어지러움(무질서)과 추한 혼돈이 있다.

토지 이용 계획, 국토 이용 계획도 있어 온 나라인데, 도시 계획, 도시의 미학이 없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아름다운 도시를 디자인하고 계획하는 지성과 양식을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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