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통사, 불어로 번역·출간되다

얼마 전 서울대 국문과 조동일 교수의 좬한국문학통사좭가 불어로 번역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는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다니엘 부셰의 번역으로 프랑스 파야르 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이다.

불어권에서 한국문학사가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좬한국문학통사좭를 비롯, 그 동안 30여권의 책을 통해 세계문학 속의 한국문학을 자리매김 하는 데 몰두해온 조동일 교수의 연구성과가 마침내 세계에까지 인정받게 되었다는 증거다.

좬한국문학통사좭 - 국문학의 집대성
조동일 교수는 이 책의 서문에서, “우선 빠뜨리는 것이 없도록 하는 데 힘쓴다”고 쓰고 있다. 이와 같은 의도는 저작 속에서 방대한 자료의 집대성으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제1판이 출판된 이후에도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거나 추가되는 사항이 있을 때는 판을 거듭해서 가능한 모든 것을 담고자 했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사항은 그의 독특한 시대구분이다. 그는 기존에 행해진 왕조교체에 의한 시대구분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라고 비판하고 시대구분은 문학자체에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리하여 국문학의 시대구분을 언어선택, 문학갈래 체계 형성, 문학 담당층의 교체, 사회경제구조의 변화를 준거로 하여 다음의 여섯 항목으로 구분한다. 1)원시문학(구비문학), 2)고대문학(건국신화의 출현, 한자 전래와 한문학의 성립, 향가의 형성), 3)중세 전기 문학(한문학 특히 한시의 유행), 4)중세 후기 문학(경기체가의 출현), 5)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소설의 등장), 6)근대문학(1919년 또는 1920년대 이후).

이러한 시대구분은 한국근대문학이 고전문학과 단절된 채 서구문학의 이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일반적 인식을 수많은 사례의 발굴과 제시를 통해 극복한 결과에 해당하기에 그 의의가 크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밝혔듯이, “지면이 한정되어 있고, 또한 서술의 균형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소상하게 거론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남아있다.

문학 일반론 - 자아와 세계의 관계

조동일 작업의 특이성은 기실 문학에 관한 일반론의 정립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가 창안해낸 문학 일반에 관한 보편적 이론은 『한국소설의 이론』, 『문학연구입문』 등의 저서들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그가 문학에 관한 원론적인 접근에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커다란 문제를 돌보지 않는다면 문학연구에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혼란에 빠질 염려가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이용되고 있는 원론적 이론이라는 게 서구에서 수입해온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은 그로 하여금 국문학에 입각한 이론의 창안을 서두르게 했다. 이기철학을 원용한 장르 규정은 바로 그러한 시도의 결실이다.

이기철학은 모든 것은 음양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고 대립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관점인데, 문학작품에서의 음양은 자아와 세계로서, 양자의 대립적 구조가 문학에 관한 논의에서는 언제나 핵심적인 의의를 가진다고 그는 본다.

그리하여 그는 장르 구분에 있어 4분법(서정, 교술, 서사, 희곡)을 채택하고 그 각각을 자아와 세계와의 관련성 속에서 파악한다. 예를 들어 서사 중에서도 특히 소설은 자아와 세계가 상호 우위에 입각하여 대결하면서 자아와 세계 양쪽에 통용될 수 있는 진실성 즉 소설적 진실성을 추구하는 장르라는 것이다.

생극론 - 세계문학사를 위하여

그의 연구는 이에 그치지 않아 세계문학사에까지 손을 대기에 이른다. 이 작업은 한국문학사 서술에서 얻은 문학사 서술의 일반적인 방법이나 이론을 동아시아문학사, 제3세계문학사, 세계문학사에 널리 적용하여 문학사 서술의 보편적인 모델을 만들어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 하에 진행되었다.

1991년 『제3세계문학 연구 입문』에서부터 작년에 출간한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에 이르는 9권의 저술들이 그 결과물들이다. 이들 저술들에서 그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세계문학사가 유럽 문명권의 문학이 세계문학의 중심이고 다른 문명권의 문학은 그 주변이라고 보는 점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제3세계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변증법을 중심으로 한 서구 소설이론을 넘어서기 위해 독자적으로 구상한 생극론을 세계문학사 서술의 새로운 이론적 잣대로 제시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생극론은 이기철학에서의 음양론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발전-쇠퇴-생성’의 원리를 그 기조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필요한 자료를 모두 원문으로 읽지 못하고 번역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세계문학에 대한 충실한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한 점은 조동일 교수 스스로도 결함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련의 연구작업은 그 선구적인 성격으로 인해 이제 겨우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높이 평가되어 마땅하리라 본다. 따라서 그의 연구성과에 대한 냉철한 검증 역시 그 원대한 취지와 노력에 대한 긍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검증 작업을 통해 후학들이 조동일 교수의 업적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그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던 문학의 미시적 접근에 보다 집중하여 마침내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을 리드하는 선봉에 서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이제 그리 헛된 꿈만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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