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춘수가 새 책 좬사색사화집(四色詞華集)좭을 냈다. 그의 나이 여든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정열이요 에너지다. 1948년부터 시작된 그의 시작 열정은 지금까지 20권에 육박하는 시집으로 갈무리되었고, 그의 시에 대한 사색과 고찰은 여러 권의 시론집으로 상재되었다. 그러니 김춘수야말로 명실공히 시와 함께 살아온 시의 사람(詩人)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이번 새 책은 종래의 것과 좀 다르다. 그것은 시집도 시론집도 아니다. 일종의 비평서다. 하지만 작품론이나 작가론은 아니다. 1910년 이후 현재까지의 우리 현대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대표 작품들을 실었고, 그에 대한 짧은 코멘트를 비평형식으로 달아놓은 것이다.

시작품 선정의 기준을 전통 서정시의 계열, 피지컬한 시의 계열, 메시지가 노출된 시의 계열, 실험성이 강한 시의 계열등 네 가지로 분류하였고, 그 중에 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것들을 추려서 사화집으로 엮었다고 한다. 김춘수는 책의 서문에서 “이것은 나의 연래의 숙원이었다.…… 성격을 가진 사화집을 나대로 엮게 되어서 우선 보람을 느낀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사화집에 건 김춘수 자신의 정성과 포부가 어느 정도인지 느껴진다.

여덟 번째 시집 『타령조·기타』(1969) 이후 시를 넌센스의 경지, 해탈의 극단적인 상태, 인간 부재의 시에 이르게 하고자 한 그의 실험을 우리는 ‘無意味詩’라 부른다. 그는 시에서 대상을 소멸하고 의미를 지우고 오직 리듬만이 살아있는 순전한 시를 갈망했고, 그 방법으로 비유를 없애고 서술적 이미지를 사용했으며, 마침내 허무에 이르는 시를 지향했다. 『처용단장』(1991)연작시는 그러한 실험과 훈련의 결정이었다. 30년이 넘도록 그는 이런 시세계를 고집하고 있다.

그의 이런 뚝심은 새 책 『四色詞華集』에도 그대로 배어 있다. 제목만 봐도 그렇다. ‘四色’이라니. 사화집에 이런 한정사가 붙은 예를 거의 보지 못했다. ‘色’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빛, 색깔을 의미한다. 또한 ‘詞華’라는 말도 화려하게 수식된 시문을 의미한다. 따라서 ‘四色詞華’라는 말에는 시의 내용보다는 예술성과 미를 중시하는 김춘수의 취향이 은근히 스며 있다.

그는 스타일리스트다. 그는 시작 초기에 릴케 스타일을 실험했고, 『한국 현대시 형태론』을 쓸 만큼 형태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그는 시의 형태를 분류하는 기준으로 ‘리듬’을 제시한다. 산문과 운문의 가름은 ‘리듬’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형태적 관심은 『四色詞華集』에 실린 시들을 비평하는 데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그는 유미주의자다. 그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그는 시를 관념을 담는 그릇이나 도구로 사용하기를 원치 않는다. 시는 시로서 이해되어야 하고, 시는 예술이고 평화와 아름다움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낸 시보다는 사물시나 정경묘사시가 시 고유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그는 시의 리듬을 중시한다. 그가 좋은 시를 평가하는 중요한 가치관은 그것이 시로서의 고유한 해조를 드러내고 있느냐 하는 데 있다. 그래서 그는 전통서정시의 계열이 나타내는 해조를 아름답다 한다.

『四色詞華集』은 타인의 시작품을 통해 자신의 시관을 드러내는 김춘수적 말하기 방식이다. 그는 이 책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하거나 너무 자상한 해설을 하려 하지 않는다. 자칫 현학적이거나 작품 외적인 요소를 적용해 작품로서의 시의 진가를 해칠까 조심한다.

그래서 난삽한 시는 난삽한 대로 그 난삽성의 바탕만 지적하고자 한다고 한다. 이렇게 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배려는 시적 자유를 사랑하는 김춘수의 속내일 것이다.
우리 현대시를 시 자체의 모습대로 보기 원하는 독자들에게 『四色詞華集』은 좋은 길동무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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