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巫)의 세계-신령과 인간의 조화

무(巫) - 한국 문화의 뿌리

탁석산은 그의 저서 좬한국의 정체성좭에서 한국의 문화를 꿰뚫고 있는 것은 샤머니즘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의 샤머니즘을 무(巫)라고 지칭할 때, 보통의 경우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샤머니즘적 요소, 무(巫)의 요소는 매우 많다.

이에 대해 조흥윤은 다음의 세 가지 경우를 들어 설명한다. 첫째 무(巫)를 신앙하는 신도들의 종교생활, 둘째 신도가 아닌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 들어 있는 무(巫)신앙의 요소, 셋째 다른 종교에 내재해 있는 무(巫)의 요소가 그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서 무(巫)를 신앙하여 무당의 굿을 의뢰하는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길일을 잡아 결혼이나 이사를 한다든가, 고사를 지내고, 점을 보고, 부적을 소지한다든가 하는 행위들에 대해 너무도 당연시 여기고 있다.

외래 종교의 수용과정에서 토착화라는 명분으로 무(巫)의 요소가 개입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불교의 경우 불교사찰에 산신각이나 삼성각이 자리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독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근간에 기독교와 무(巫)의 관련성을 논하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는데, 최길성은 다음 세 가지 경우를 들어 이들의 관련성을 지적한 바 있다. 첫째, 영혼불멸을 믿는다는 점, 둘째 사탄이나 잡귀가 병의 원인이라 보는 질병관, 셋째, 물질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다는 점이 그것들이다.

이처럼 외래 종교의 수용과정에서 무(巫)의 요소가 가미되고 있는 것은 무(巫)의 특징인 기복신앙적 측면이 외래 종교에 요구되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무(巫)에 대한 몇 가지 오해
한국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무(巫)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먼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무속(巫俗)이라는 용어를 보자. 이는 조선조가 무당을 천민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풍속을 무속이라고 지칭한 데에서 유래한다. 무속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천하고 부정적인 것을 뜻하는 용어인 셈이다.

보편적인 종교관, 즉 종교를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궁극적 믿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무(巫)가 종교가 아니라는 점은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교조, 교리, 또는 경전, 교단이라 불릴 만한 것을 무(巫)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무(巫)를 종교로 보기 어려운 것일까? 이에 대해 조흥윤은 강력히 부정한다.

즉 무(巫)는 고대에 신교(神敎)라 불렸다는 점에서 이미 무(巫)를 종교의 일종으로 봐야 하며, 초월적 존재로서 신령을 믿으며, 단골(신도)을 두고, 이들 사이에 사제로서 무당이 있어 종교의례를 통하여 신령과 단골 사이를 중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종교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유사성을 보인다.

그렇다면 무(巫)를 민간신앙이라 보는 관점은 어떠한가? 민간신앙이라는 용어가 가진 개념 정의는 민간인이 신앙하는 자연적 종교라는 것이다. 자연적 종교이므로 교리, 교조도 없고 윤리성도 없으며 속신(俗信)과 밀접하여 사회적 폐단을 낳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관점이 생겨난다.

황루시에 의하면, 이처럼 부정적 관점이 생겨난 데에는 민간신앙이라는 용어가 일제에 의해 쓰인 용어일 뿐 아니라, 무(巫)가 마을굿의 형태로 공동체 의식을 고양시킨다고 본 일제가 무(巫)를 억압하고 탄압한 것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무(巫)가 보편적인 종교적 구조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신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잘못이다. 무(巫)는 종교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무(巫)에 대한 이해와 연구는 종교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일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무(巫)를 무속(巫俗)이나 민간신앙의 차원으로 이해하여 민속학적 관점에서 주로 이해되고 연구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점이다.

무(巫)의 윤리성 - 조화의 세계

무(巫)의 종교적 구조는 하늘신, 땅신, 산신 등의 자연신과 시조신, 조상신들이 각기 기능을 담당하는 신계(神界)와 현실사회와 신도들의 안위와 복덕을 위해 이를 중재하는 무당과 집안에 신령을 모시고 개인적 종교의례를 행하는 단골로 이루어져 있다.

굿판에서는 해당 신령이 모셔지고 무당의 공수(신령의 뜻 대신 전하는 말)를 통해 신령과 단골이 만나는 종교체험이 행해진다. 이 체험 속에서 인간은 온갖 부조리와 부조화의 세계를 넘어 신화와 신령의 세계로 들어가며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조화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는 신령과 인간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할 때 형성되는 것이며 이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무당의 중재를 통해서이다.

이러한 조화가 깨지는 것은 단골(신도)이 인간사회의 윤리, 즉 부모에 대한 효, 이웃에 대한 사랑, 형제간의 우애 등의 윤리를 지키지 않았을 때 일어난다. 결국 무(巫)의 종교관은 인간의 기본 윤리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며 이를 통해 사회의 안녕을 유지하는 데에 기능한다. 이는 개인의 굿판을 비롯해서 마을굿의 형태로까지 확장되기도 한다.

무(巫)가 옛부터 전해내려 온 전통적인 풍속이나 종교이어서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巫)가 지양하는 세계가 올바른 인간 사회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비로소 의미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이 맹목적인 믿음은 오히려 많은 폐단을 낳는다.

그것은 무(巫)를 신봉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巫)를 맹신하는 데에서 야기되는 것이다. 종교를 맹목적으로 믿는다는 것은 그 종교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인 문제 의식을 간과하는 데에서 일어난다. 무(巫)의 윤리성을 우리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무(巫)를 더 이상 버려야 하는 악습으로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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