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_파일/ 마키아벨리, 「군주론」, 강정인 역(까치, 1994)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고전이 통시적인 의문을 제기하거나 혹은 이런 의문에 일련의 해답을 주기 때문이다. 『군주론』은 1532년 이탈리아에서 ‘군주의 통치를 논하고 이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기’ 위해 써서 한 군주에게 헌정된 책으로 그 속에는 정치가 무엇인지, 혹은 정치권력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의견이 적혀 있고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몇 가지 점에서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우선 『군주론』은 정치영역이 종교적 가치 혹은 윤리적 영역과는 다른 독자적인 영역이며 그래서 정치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고 접근해야하고 이 기준에 따라 올바른 정치를 판단해야한다는 견해를 펼치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는 중세의 교회중심, 신중심의 사회로부터 세속권력이 분리되어 개인중심의 사회의 싹이 자라나던 때였다.

이전의 정치권력은 신에 의해서 부여된 권력으로서 일반 사람이 정치권력에 복종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것이었으며 군주가 정치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신에 의해서 부여된 권리라고 인정되었다. 그런 점에서 종교적 윤리와 종교적 덕의 연장선에서 정치권력을 논하였고 정치권력의 세속적인 속성의 존재자체가 부인되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질서는 종교적 질서의 하부구조가 아니며 정치현상은 종교적 가치와 제도의 영향력을 벗어난 독립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정치를 종교적 가치나 윤리적 고려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권력의 획득, 유지, 팽창의 차원에서 조망했다. 현대의 정치학은 이런 점에서 바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두 번째 정치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라는 지침에 관한 것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마키아벨리의 권력관을 지나치게 기술적이며 목적보다는 수단에 치중한 정치사상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의도했던 것은 수단적인 측면에 치중했다기 보다는 종교로부터 독립한 정치의 행동 준거틀을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군주는 어떤 원리에 따라서 행동하고 통치하는데 그것은 정념이나 일시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되며 오염되지 않는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의지로 표상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정치행위가 일정한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을 획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개인행동에 대한 평가와 국가공동체 및 인민통치행위에 대한 평가는 다르며 이것이 국가의 이성이며 국가의 이익이다. 그래서 개인을 평가할 때는 남을 신뢰하는 일, 약속을 잘 지키는 일이 유덕한 행위이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재화의 희소성 때문에 국가는 늘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있어서 사적인 개인과는 달리 반드시 남을 신뢰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행위에 집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군주는 국가이익을 합리적이고 계산적으로 판단하여 이에 걸맞는 정책수단을 사용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군주론』은 오늘날의 정치학 즉 정치현상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설명하는 학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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