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세계 -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성찰

지난 9월 26일 시작돼 오는 11월 24일 막을 내리는 <미디어 시티 서울 2002> 행사, 그리고 이 행사와 관련해 방한한 프랑스의 석학 장 보드리야르의 강연을 계기로 미디어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새삼 증폭되고 있다.

현대 기술혁명을 발판으로 미디어가 오늘날 우리의 삶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에 지배되어 있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많은 논자들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 또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디어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최대한 빠르게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그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느냐 하는 점을 따져볼 때 문제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는 게 드러난다. 미디어 연구자 토드 기틀린은 매스 미디어의 보도가 ‘프레임’에 갇혀 있으며 바로 그러한 ‘프레임’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는다는 것을 역설한다. 다시 말해 그는 ‘프레임’을 통해 현대의 매스미디어가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유지시키고 강화한다고 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에 대한 대안으로 모든 사람이 미디어의 조작자가 돼야 함을 강조한다. 한편 대니얼 부어스틴은 ‘의사사건’ 개념을 도입해,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 세상을 더욱 이해하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의사사건’들에 파묻혀 현실로부터 더욱 유리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보드리야르의 이미지 비판과도 흡사한 면이 있다.

보드리야르는 미디어에 대한 가장 충실한 비판자로 알려져 있다. 그에 따르면 미디어의 발달은 이미지의 홍수를 불러왔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이미지는 ‘무엇에 대한’ 이미지가 아닌, 그 자체가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이미지(시뮬라크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미지가 실재를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며 사람들은 이를 실재(현실)에 대한 이미지로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이미지는 투명성과 가시성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처럼 모든 것이 보여짐으로써 사람들은 더 이상 볼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어 현실에 대한 무관심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은 현실이 아니며, 현실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현대예술에 대한 비판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미디어의 부정적 속성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이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미디어아트는 따라서 그 비판의 주요 대상이 된다. 보드리야르는 말한다. “예술가들이 세상이 미디어화하는 데 음모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이 유행을 따라가면 미디어의 반복밖에 더 되는가. 이미지의 증식과 구별되는 어떤 성스러운 이미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성스러운 이미지’란 실재하는 대상으로부터 솟아 나온 ‘자연적인’ 이미지를 뜻하리라. 한 가지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보드리야르가 예술 그리고 이미지 자체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그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논하고 있을 뿐 스스로도 긍정적인 예술과 이미지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논의에 대해 “미디어 기술의 발전에 따른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하고 말하는 것은 “이미 젖었으니 빠져 죽지”하는 것과 그 용법상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이미 젖었더라도 재빨리 물에서 빠져나와 젖은 몸을 말리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바로 현대 우리의 삶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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